요한계시록 2-3장에서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빌라델비아, 사데, 라오디게아,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가 수신이 되고, 각 교회에 분명하고 확실한 그리스도의 계시가 전달되고 있다. 이 일곱 교회에 전달된 메시지 서두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 되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잘한 부분에 있어서 칭찬과 함께 그릇되게 행한 것들에 대한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이는 교회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리로 이끌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일곱 교회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만 한정되지 않고 당시의 교회들을 대표로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로서 각 교회의 상황에 적절하게 주어진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계시를 전달하는 이유는 교회가 이미 천상의 영역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교회의 진정하고 영원한 본향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시작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천상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교회에 상기시키려는데 있다. 더불어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초점은 교회가 불경건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맞추어져 있으며 교회는 자신들의 삶과 행위의 초점을 둘 중 어느 한 관점에 맞추어야 하는 선택에 직면하고 그들의 영원한 운명은 그 선택 여하에 따라 결정됨을 알린다. 이렇듯 교회들은 어떤 식으로든 타협의 위협에 직면할 것이며 교회들은 수신된 편지에서 제시된 메시지에 복종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에 직면한다. 따라서 이 서신은 받는 교회들에게 경건한 삶의 지침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인내해야 할 분명한 이유와 불신앙적인 문제들과 싸워 타협하지 말 것에 대하여 강력히 호소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킨 자들이니라."(계 14:12). 여기에서 '인내와 믿음'이 나란히 사용된 것은 인내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끝까지 인내할 것이고, 중도에 포기한다면 믿음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짐승의 자비 없고, 가혹한 회유와 핍박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권과 약속을 믿는 자는 인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와 경배를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한국 교회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더불어 긴장감을 제공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작금의 상황에서 교회가 몸살을 하며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며, 특히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요한계시록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전열을 정비하고 시대의 배후에 있는 영적 세력들과의 싸움을 또한 절감하면서 요한계시록이 주는 '인내'라는 키워드를 붙들고 전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지상의 교회와 새 하늘과 새땅을 보여주는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