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겨울나무를 주제로 제작된 연구자의 박사학위청구전 《경계에서_마주하다 (An Encounter on the Border)》(2020.9.9.-9.15, 동덕아트갤러리)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수묵의 역사적 변화와 현대로의 흐름 그리고 연구자의 수묵이 지니는 특징과 의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수묵은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시대와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요구들이 작가의 예술적 체험과 부단한 창작 실천을 통해 수용되며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과정으로 수묵은 독자적인 심미체계와 감상관을 지니게 되었으며, 결국 동양회화의 실체이자 근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수묵 미학의 근원은 변화를 초극하는 현상 너머의 본질이다. 이는 매우 현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동양의 정신세계를 관통한다. 전통 수묵의 근간인 정신성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이며 이어져 왔는데 이것은 바로 당면한 시대에서의 수묵 정신성에 대한 해석과 조형적 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즉 이러한 변화 과정을 통해 수묵은 시대의 가치를 수용하고 새로이 해석되면서 생명력을 유지해 온 것이다.
연구자는 수묵의 변화를 추적하고 연구함으로써 수묵이 지니고 있는 유장한 생명력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더불어 근대 이후 수묵의 전통성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집단 움직임의 모색방향에 관한 연구는 현대 수묵의 실체와 기반에 접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물질 만능의 서구적 가치관으로 점철되는 현대 사회에서의 수묵연구는 수묵의 요체인 정신성과 물질사회의 충돌, 그리고 서구미술과의 융합이 변화의 새로운 촉발점이 되어 수묵의 현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의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연구자의 현대 수묵으로의 실험과 연구는 전통 지필묵의 요체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전통 동양회화에 있어 지필묵은 수묵을 표현하는 기본 매재(媒材)로 도구이자 수단인 동시에 철학과 정신성을 표출하는 매개체이다. 또한 변화의 실체를 내재한 것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운용과 표현 방법을 다르게 한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자는 전통 매재인 지필묵의 정통성에 머무르지 않고 그 범위를 확장하여 독자적인 표현양식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재료의 변화가 보여주는 차이는 그대로 표현의 차이를 의미하며. 나아가서는 새로운 정신과 사상을 전개하게 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표현연구에 있어 전통매재인 지필묵의 탈피와 변용 그리고 응용을 기반으로 구상성과 추상성을 아우르는 수묵의 특성을 발현시키고자 하였다. 동양의 정서를 담고있는 내구성이 강한 한지를 수용하여 종이의 뒷면에서 먹이 스며들고 배어나오도록 하였고, 배어나온 형상에 철필(鐵筆)의 성질을 가지는 날카로운 도구로 표면을 긁어 전통 선묘와는 다르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편필에 의한 반복되는 적묵(積墨)은 맑고 담백한 고유의 먹색 보다는 먹을 종이에 새겨서 넣은 것과 같은 둔탁하고 질감표현에 가까운 표현으로 연구자의 수묵양식과 풍격을 이루었다.
이는 전통에 기반하여 현대의 가치를 수용하고 동시에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즉 재료 변화와 새로운 표현 도입을 통해 연구자가 실험한 현대 수묵으로의 표현모색의 결과이며 전통적 가치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인 셈이다.
그리고 그 표현에 있어 연구자의 작품들은 줄곧 일상에서의 경험과 단상을 바탕으로 하였다. 연구자에게 일상의 경험들이 예술로 승화되는 작업과정은 개인적인 체험의 기록이자 감정을 표출하는 장(場)으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정신적 출구이며 일종의 위안으로 치유의 시간이다. 《경계에서_마주하다 (An Encounter on the Border)》의 작품들 또한 연구자의 일상에서 마주한 대상의 인상 수용으로 표현이 시작되었다. 겨울나무의 생태적 특징을 통해 삶의 양태를 반추하였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 상태를 작품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후 연구자의 사유와 외연의 확장으로 대상을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추상의 조형질서로 귀착되었다. 연구자는 이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대상의 형태에서 벗어나 본질에 육박하는 변화의 모습이 결국 수묵의 본질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또한 개인적인 일상과 생각들을 예술을 통해 표출하면서 받은 위로와 안식은 예술의 기능과 목적에 새삼 주목하게 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연구자는 수묵 역사의 총체인 전통성을 고찰하여 현대 수묵으로의 심미표현에 대한 가능성과 지향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기법과 물성의 발현 연구는 시대와의 관계와 표현양식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고 연구자의 예술적 표현범위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끝으로 연구자가 작업을 진행하면서 받는 치유의 과정은 현대미술의 예술적 기능으로 보는 이에게도 위로를 건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