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제정치에서 가장 진부하면서도 뜨거운 이슈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경쟁의 양상은 2011년 아시아로의 회귀(아시아 재균형 전략)를 선언한 미국을 시작으로 일대일로 전략, 인도 태평양 전략으로 이어지는 전략의 충돌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지역패권을 통해 경제·안보적 탈동조화를 시도하는 중국과 자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러한 충돌은 아시아 태평양의 바다, 특히 남중국해를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은 공통적으로 말라카 해협이나 남중국해가 위치한 동남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고, 동남아 국가들 또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국의 생존을 위한 활로를 모색하며 각국의 상황에 맞는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의 대응을 살펴보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공격적인 해양전략, 남중국해 군사기지화 시도 등으로 인해 안보적 위협이라는 유사한 상황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중 경쟁에 대해 상이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상에 따라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들이 미중의 전략적 경쟁에 정확히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대응정도에 차이가 있다면 어떤 요인 때문에 차이가 발생했는지 분석해보았다. 연구목적에 따라 본 논문에서 제시한 독립 변수는 경제적 관계, 역사적 관계, 행정부의 정책성향 등 세 가지로 선정했고, 이 변수를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중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의 사례에 대입하여 각 국가들의 대응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국가별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르면 왜 다른지 분석했다.
필리핀은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이후 중국과의 우호를 증진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안보협력이나등 관계가 훼손된 것은 아니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근미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응전략 결정요인 중 경제적 관계 측면에서는 중국에 대한 교역의존도가 다소 높지만 대외원조 지원 및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한 해외송금 측면에서는 미국에게 의존하는 등 미·중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특별히 특정 국가에게 경제적 의존도가 높지는 않다. 또한 역사적 관계 측면에서 미국에게 식민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음에도 문화·종교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미국과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등 미국에 대한 우호도가 높고, 행정부의 정책성향 측면에서는 행정부의 대미 정책적 우호 성향이 관찰되는 등 미국에 대한 우호도가 높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베트남은 3불정책으로 대표되듯이 중국과 일정한 수준의 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도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대응전략 결정요인 중 경제적 관계 측면에서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다소 높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역사적 관계 측면에서 베트남 사회에서 화인의 영향력이 크지는 않고, 공산당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중국과 과거부터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지만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하여 오랜시간 갈등해온 점을 고려하면 미국과 중국에 대한 우호도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행정부의 정책성향 측면에서 또한 공산당 정치국 위원들의 성향역시 중국 우호성향과 미국 우호성향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특정 국가에 대한 정책적 성향이 나타나고 잇다고 볼 수 없기에 미·중 전략적 경쟁에서 어느 특정 국가에 대해 우호적인 전략을 취하는 것이 아닌 중도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말레이시아는 등거리 외교를 기본원칙으로 하지만 3국 중 중국과 가장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근중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대응전략 결정요인 중 경제적 관계 측면에서는 교역이나 대외원조 모두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역사적 관계 또한 말레시이아 사회에서 화교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점과 정치적 관계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등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행정부의 정책성향 측면에서도 말레이시아는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관료들의 소극적인 입장표명, 중국에 대한 우호발언 등 중국에 대한 정책적 우호성향이 있어왔다고 볼 수 있기에 3가지 요인 모두 중국에게 우호적인 전략을 취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미·중 전략적 경쟁 속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고 어떤 대응을 모색하고 있으며, 대응의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위와 같이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는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 갇혀있다는 틀에서 벗어나 외교공간의 확대와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경제·안보 지형을 동남아로 확대하고자 "신남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함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