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중국의 국가 정체성의 변화가 지정학적인 세계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이에 따른 대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고찰해보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국가 정체성 변화를 독립변수로 하였고, 지정학적인 세계관(관점)을 매개변수로 설정하였으며, 중국의 대한반도 전략을 종속변수로 설정하였다.
이 논문은 비판지정학을 연구방법으로 하여 중국 지도자의 발언, 당대회 보고, 기관 성명 등의 자료를 활용하였고, 선행연구들을 검토하는 문헌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각 정권별 지정학적인 관점의 차이와 대한반도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비교연구를 진행하으며, 주요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중국 성립 초기 중국은 공산주의 진영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일국(一國)으로써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진영과의 세력다툼에서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제3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외교 정책은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소련과의 이념적 대립은 자신의 정체성을 제3세계 국가로 변화시켰고, 당시 두 강대국인 미·소 양국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으로 제3세계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공산국가와 제3세계 국가로서의 정체성 속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접근은 북한 일변도적인 특징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는 곧 순망치한(脣亡齒寒),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담론으로 정당화되었다.
둘째, 덩샤오핑 집권 이후 중국은 점차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하였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안정적인 대외환경 조성이라는 목표 하에 실용주의 외교 정책을 시행하였다. 개혁개방 정책의 시행과 더불어 한국과의 경제적 의존성 증가는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접근의 분화를 유발하였고, 마오쩌둥 시기의 북한 일변도적 접근이 아닌 남북 균형적 접근의 기틀이 마련되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대항점에 위치하고 있던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동아시아 네 마리 용', '두 개의 한국'이라는 담론으로 인해 재구성 되었다.
셋째, 장쩌민 시기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점차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로이 탐색하였던 시기였다. 냉전의 종식으로 양극 체제는 종료되었고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로서 국제질서를 바라보았으며, 중국위협론에 대한 대응이 요구되었던 시기였다. 덩샤오핑 시기 제3세계 국가,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점차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대국으로의 정체성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적극적인 다자외교를 통해 비교적 국제질서에 순응하는 형태로 표출되었다. 이 시기의 대한반도 정책은 덩샤오핑 시기와 유사하게 남북 균형적 접근이 기본을 이루었으며, 북핵 위기와 고난의 행군 등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과 통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을 검토하였던 시기였다.
넷째, 후진타오 시기 중국은 '화평굴기(和平屈起)'를 핵심적인 외교 노선으로 정하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였다. 미국과의 전면 대결을 피하면서 변화된 정체성에 맞게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이념은 '조화세계(調和世界)' 담론으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 중국은 강대국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국제사회에서 기존의 질서와 규범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의 견제에 대응하고자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 이슈에 대한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파트너로써의 정체성은 북핵 문제에 대한 다자회담의 제의 등 중간자(혹은 균형자)적 역할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보이고 있는 강대국으로서의 정체성은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주도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국은 균형자적 역할에 머물렀던 후진타오 시기에 비해 더욱 그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남북 균형작적 역할에 머물렀던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자신을 언급하는 점, 그리고 시진핑 집권 1기에 보였던 대북 강경 기조와 현재 대북 친향적 기조는 분명히 구분되어진다.
상술하였듯 중국의 외교정책은 자국의 정체성과 이에 따른 지정학적 세계관의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해왔다. 비판지정학의 시각에서 분석해본 중국의 대한 반도 정책은 그 연속성과 점진적인 발전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점차 강대국으로서의 역할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