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현재 미국 태평양 전략의 원형이라 볼 수 있는 전간기 미국 오렌지 전쟁계획의 변화를 전쟁계획-군사력 간 균형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전쟁 발발 이전 국가가 어떻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가는 전쟁 시 그 국가의 행동을 결정한다. 하지만, 전쟁계획이 군사력이라는 수단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퇴색되어 구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전간기 미국이 일본을 잠재 적국으로 상정하여 발전시켜 온 오렌지 전쟁계획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본 논문은 미국의 오렌지 전쟁계획을 해군전략적 요소를 갖춘 전쟁계획으로 정의하였다. 전쟁계획에 대한 미 국방부나 합참 차원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의 오렌지 전쟁계획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자들이 '전략(Strategy)'이라고 공통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오렌지 전쟁계획은 해군력 운용이라는 점에서 해군전략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계획을 보다 상위 개념인 전략과 동일한 수준으로 두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본 논문은 미국의 오렌지 전쟁계획을 전략이 아닌 전략적 요소를 갖춘 계획으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전쟁계획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전쟁계획-군사력 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즉, 해군전략적 요소를 내포하는 오렌지 전쟁계획은 해군력과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의 핵심주장은 1933년 이전인 전기 오렌지 전쟁계획은 '전쟁계획-군사력 간 불균형'이 발생하여 현실성이 결여되었지만, 1933년 이후 후기 오렌지 전쟁계획은 '전쟁계획-군사력 간 균형'을 점차 맞춰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바로 루즈벨트 행정부 시기 이후 시작된 해군력 건설이었다. 그렇다면 왜 1932년 이전에는 해군력 건설이 미진하였으며, 1933년 이후 해군력 건설이 활발해질 수 있었을까? 본 논문은 해군력 건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국제체제 수준의 안보환경, 국가적 수준의 경제적 요인, 개인적 수준의 정책 결정자 요인으로 구분하여 서술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해군력 건설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해군력 건설이 '전쟁계획-군사력 간 균형'에 미친 영향을 고찰할 것이다.
전기 오렌지 전쟁계획을 분석한 결과 1932년 이전에는 전쟁계획-군사력 간 불균형이 발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해군력 건설이 제한되었던 것에 기인했다. 해군력 건설이 제한되었던 것에는 3가지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다. 안보환경 면에서 워싱턴/런던 해군군축조약 등 국제제도적 제약이 강했으며, 경제적 요인으로 국방비/해군군사비가 소폭 감소하였다. 심지어 정책결정자인 윌슨, 하딩, 쿨리지, 후버 등 4명의 대통령의 해군력 건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반면, 후기 오렌지 전쟁계획을 분석한 결과 1933년 이후 전쟁계획-군사력 간 균형을 갖춰가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균형은 1933년 이후 5차례의 해군력 건설 법안이 제정될 정도로 해군력 건설이 활발했다는 것에 기인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3가지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다. 안보환경 면에서는 워싱턴/런던 군축조약이 실효화되고, 일본의 위협이 증대되고 있었으며, 경제적 요인으로 국방비/해군군사비가 지속 증가하고 있었다. 정책결정자인 루즈벨트 대통령과 하원의원이었던 칼 빈슨 의원 또한 해군력 건설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본 논문이 현대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동맹국인 미국 태평양 전략의 기원을 이해함으로써 현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보다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있어서 전력 건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군사전략적 차원에서 한 국가가 군사전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군사력 건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변용할 수 있다. 셋째, 급변하는 안보환경 하에서 군사전략을 지속적으로 보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