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은 에큐멘과 게센의 대립 관계처럼 다양한 것들을 이원론적 도식 아래 놓는다. 본 연구는 우선 소설에서 암시되는 이분법적 구분 간의 위계를 살펴보며 주체, 남성, 이성과 같은 성질이 에큐멘에 투사될 때 게센에는 타자, 여성, 비이성과 같은 성질이 부여되며 두 문화 간의 대비가 명확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본 논문은 『어둠의 왼손』이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남성 중심적 지식 체계에 대한 탈중심적 시도를 수행한다고 분석하고자 한다. 『어둠의 왼손』은 주인공인 겐리 아이가 에큐멘의 특사로서 작성한 보고서인데 서술자가 일원화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겐리의 서술방식은 작중에서 포착할 수 있는 에큐멘의 지식에 대한 태도와도 상반된다. 에큐멘은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권위를 중심으로 지식을 선별하고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에스트라벤의 일기, 카르히데 화로들의 구전설화 등을 두루 포함하여 작성된 겐리의 보고서는 특정한 구심점을 두지 않은 게센의 지식 체계에 더 가까운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어둠의 왼손』이 텍스트의 형식 면에서 에큐멘의 주체 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고 있다면, 텍스트의 내용 면에서는 겐리가 남성성에 대한 추구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로부터 소설은 남성성을 최선으로 여기는 에큐멘의 주체 중심적 태도로부터 멀어지는 겐리의 변화를 방증하는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어둠의 왼손』은 소설의 첫 문장으로 "진실은 상상력의 문제"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진실과 상상력은 함께 이원적 대립 관계를 맺고 있으며 소설 내에서는 각각 이성과 비이성을 비롯해 이원론에서 파생된 개념들을 상징할 수 있는 단어이다. 본 연구는 『어둠의 왼손』이 첫 문장에서 진실과 상상력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양성성의 가치를 독자에게 드러내 보이며 이원론에 항상 뒤따랐던 위계적 해석에 대안적인 관점을 유도한다고 해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