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무숙의 단편소설에 드러난 종교적 모티프를 분석함으로써 작가가 종교적 소재를 활용해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식을 고찰하고자 한다. 천주교 신자였던 한무숙은 자신의 소설에 기독교, 불교, 유교, 무속신앙등 다양한 종교를 등장시켰다. 한무숙은 그 교리를 다루기보다는 소설 속 인물과 종교가 맺는 관계를 묘사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는 전통과 근대, 운명과 의지, 현실과 이상의 대결로 표현되어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관을 맺었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한무숙의 문학세계가 추구해온 종교적 화합과 공존의 메시지에만 주목했을 뿐 소설에 차용된 종교적 소재의 의미와 활용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따라서 이 논문은 한무숙 소설에 여러 차례 나온 광신도상을 비롯해 종교 공간으로 도피하는 인물, 세례를 받고 생을 회고하는 인물 등 한무숙 소설에 나타난 '종교적 인간'의 면면을 살피는 한편 공간 묘사와 서사전략에서의 종교적 접근을 들여다본다.
이때 위 논의의 대상은 한무숙이 마지막 소설 『만남』을 발표하기 전에쓰인 단편소설들로 제한했다. 『만남』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사를 다룬 소설인 만큼, 종교가 모티프 이상의 중추로 자리한다. 따라서 작가의 포용적 종교관이 집약된 장편 『만남』이 쓰이기 이전에 제출된 단편 단위의 작업, 즉 종교적 소재가 모티프 단위로 적용되어 종교가 중심이 되지 않는 서사에서 다른 의미를 창출해내는 소설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 결과 II장에서는 엘리아데의 종교 이론을 토대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육화한 인물들을 분석한다. 「배역」과 「감정이 있는 심연」의 인물들은 작가가 보여주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원형을 간직한 존재로, 종교가 가부장제와 결탁하는 예시를 드러내기도 한다. III장에서는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이용해 헤테로토피아로서의 불교 공간을 탐색한다. 「돌」, 「유수암」은 각각 절과 암자를 내세워 성과 속의 경계를 지우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때 불교 공간은 외부로부터 도피해온 이들이 매혹을 느끼며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헤테로토피아로서 읽힌다. 이로써 불교 공간은 맞닿을 수 없을 것 같던 상반된 의식이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장소로 역할해 소설의 주제를 대변한다. IV장에서는 천주교적 형식과 내용을 빌려온 서사전략을 탐구한다. 「생인손」, 「우리 사이 모든 것이」를 대상으로 삼아, 작가의 개인사와 연관을 맺으며 후기 소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천주교적 모티프들을 일별했다. 그 중 고해성사는 인물이 속죄와 구원을 위해 택하는 발화 행위로, 주체성 회복의 기제로 쓰인다. 천주교 신앙은 화자의 치유와 인물 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로, 상실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
이 논문은 기존 한무숙 연구의 초점이었던 여성작가, 해방·전후 세대 작가로서의 한무숙을 넘어 종교적 세계관으로써 현실을 재구성하고자한 신앙인-작가로서의 한무숙을 조명해했다. 작가가 다양한 종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바탕으로 내놓은 마지막 장편소설 『만남』을 발표하기 이전에 쓴 단편소설들 중 종교적 소재들이 두드러진 작품을 분석해 작가의 양가적 현실인식이 표출되는 방식의 한 형태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