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세기 양반가(兩班家) 여성의 한글 필사본인 『윤시자긔록』의 서체를 서예학적 측면에서 규명한 것이다. 『윤시자긔록』은 해평윤씨(海平尹氏, 1834-1882)가 2년(1856-1857)에 걸쳐 자신의 반평생을 회고하며 기록한 글로, 당시 처한 상황과 심경을 시간순으로 서사한 필사본이다. 현재 조선 여성의 언간은 상당수가 발견되어 알려졌지만, 여성의 견해를 담은 자기 서사 기록은 극히 드물다. 특히 19세기 조선은 남성 중심 사회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기록이 있더라도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몇 점의 필사본만 현전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윤시자긔록』은 19세기 여성의 한글서예 사료로서 가치가 남다르다. 즉, 당대 정형화된 여성 서체인 궁체(宮體)와 달리 자유롭고 개성있는 필의의 한글서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에 본고는 『윤시자긔록』의 서체적 특징을 필법에 근거하여 분석하였다.
첫째, 용필(用筆)에 있어서는 방필과 원필, 노봉과 장봉, 중봉과 측봉 등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였다. 따라서 필획의 다양성이 돋보이며 곡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필속과 강약의 변화를 통해 운율감이 있으며, 유연함과 질박함이 어우러진다.
둘째, 결구(結構)에 있어서는 참치, 소밀, 대소, 장단, 대립이 나타나며 투박하면서도 소박함이 드러난다. 자모음의 짜임에서 일률적인 법식을 적용하지 않고 붓이 가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형이 구성되었으며, 서사 흐름에 따라 변화가 많다. 서체는 대체로 흘림을 취하였는데 간혹 정자와 진흘림의 자형을 혼용한 것이 특징적이며, 자모음과 글자 간의 조화로운 호응을 통해 조형성이 두드러진다.
셋째, 장법(章法)에 있어서는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서사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흑과 백의 안배가 이상적이다. 또한 글자의 중심축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변화를 꾀하여 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필세를 드러낸다.
『윤시자긔록』은 19세기 양반 여성의 필사본으로서 희소가치뿐만 아니라 당대 개성 있는 여성의 한글서예에서 새로운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특히 정형화된 궁체에서 벗어나 다양한 서체를 혼용하여 한글서예 서체의 확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 특기할 만하다. 따라서 본고는 『윤시자긔록』을 서예학적 측면에서 처음 시도한 연구로서 새로운 한글 서체를 발견하고, 19세기 여성 한글서예의 위상을 제고했으며, 향후 한글서예 서체 개발과 창작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