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2019년부터 2023년 사이에 제작된 연구자의 회화 작품을 재료와 과정, 감상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작품에 나타나는 유동성(fluidity)을 비인간물질의 생기성과 행위성 및 자율성에 주목하는 신유물론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여기서 유동성이란 고정되어있지 않고 변화 가능한 가변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신유물론은 기존 유물론의 인간중심주의와 수동적 물질성에서 벗어나 물질을 능동적이고 행위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물질적 전회를 주장한다. 연구자는 신유물론적 물질성을 회화의 유동성과 연결 지어 논의하고, 동시대 회화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양상을 알아본다. 연구작품은 서사적 모티브가 질료, 행위와 유동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진행되는데, 물질의 잠재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 위에 나타나며 화가의 의도는 물질 고유의 특성과 얽혀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은 비인간 물질인 회화가 화가의 의도와 분리된 자율성과 능동성을 갖고 있음을 밝힌다. 연구자는 이러한 과정 중심적 회화의 유동성을 제인 베넷과 캐런 바라드의 이론을 통해 논의하고, 완성된 화면의 시각적 가변성을 그레이엄 하먼이 주장하는 미적 경험과 연결해 동시대 추상 회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먼저 베넷, 바라드, 하먼의 이론을 물질의 유동성 및 상호작용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며, 물질의 생기와 행위성, 그리고 자율적 객체로서의 물질이라는 논문을 아우르는 개념적 토대를 마련한다. 그 후 베넷의 생기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회화와 회화 재료의 생기성과 능동적 역량에 대해 알아보고,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론에서 이야기하는 물질의 분리 불가능한 관계와 행위적 유동성을 회화적 과정에 대입한다. 이를 통해 획득한 회화 이미지의 가변성을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OOO)적 미적 경험과 함께 논의하는 것으로 비결정적 화면의 시각적 확장성을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선행 작가인 샤라 휴즈, 에이미 실먼, 그레이스 하티건의 작품을 신유물론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연구작품과의 연결 지점과 차이를 찾는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앞서 논의된 것들을 기반으로 연구작품에서 나타나는 유동성을 신유물론적 관점으로 고찰한다. 먼저 '서사적 추상'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작품의 시발점이 되는 '배제된 서사'를 '배치' 속 잠재적 '행위소'로 상정해 구체적으로 다룬다. 또한 작업 과정에 수반되는 우연성의 수용 및 중첩과 삭제의 회화적 행위를 바라드의 '얽힘'에 대입해 회화가 과정에 바탕을 두는 '물질-담론적' 실천임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혼종적이고 양가적인 이미지를 하먼이 주목한'기이함(weirdness)'개념과 함께 분석함으로써 그 시각적 가능성과 확장성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물질과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되는 회화가 하나의 유동적인 배치임을 제시하며, 하먼이 주장하는 '새로운 형식주의'에 대해 고찰한다.
연구자의 작업에서 파편적 서사는 우연과 즉흥이 동반되는 회화적 과정을 통해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화면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회화적 행위와 물성의 얽힘을 통해 색, 형태, 질감 등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미지는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서서히 구체화되어 시각적 가변성을 갖고 미적 경험의 확장성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본 논문은 회화의 유동성이 연구작품과 동시대 추상 회화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신유물론적 관점으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