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근본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실천의 영역이며 그 새로움은 주로 형식 및 양식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미 많은 형식이 실험되었고 작가의 종말이 선언된 예술의 영역에서, 특히 회화의 영역에서 기존의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본 연구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제시하는 작가의 죽음이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회화에 다가설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르트나 푸코가 제시하는 '저자의 죽음'은 주로 수용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부여하며 예술 영역에서 방향 전환을 이루었다. 이는 작가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본 연구에서는 사물 또는 자연물이라는 관점에서 이 질문에 답하며 회화의 새로운 측면을 모색하고 연구하고자 한다. 특히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을 이용해 '주인 없는 그리기', '주인 없는 생산으로서의 회화'라는 개념을 가공하고 이를 본 연구자의 작품에 적용해보려 한다.
데리다는 사물-대상의 고유한 특징을 잘 그려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사물을 묘사하는 시인 퐁주의 시가 그 의도를 벗어나 독자에게 하나의 사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미장아빔(mise en abyme)으로 개념화하면서 시를 이중의 사물로 파악한다. 연구자는 이러한 데리다의 사물(la choséité) 개념을 자연물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하여 생산자의 역할을 이중화하고자 한다. 즉 데리다가 '대상-작가-독자'의 관계를 사물로 매개하면서 의미의 미끄러짐과 차연에 대해 논했다면, 본 연구는 데리다의 개념을 차용하여 창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물질성과 우연성에 주목한다. 그리기와 해석, 수용 과정에서는 우연과 변화와 차이가 개입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작가의 창작 과정 안에서도 에피파니의 순간처럼 의도를 벗어나 작업하는/작업되는 순간들이 나타난다. 연구자는 이런 순간을 경험한 이후에 이를 연구자의 작업 방식(modus operandi)으로 삼게 되었다. 작가의 의도는 어느 순간, 질료, 테마, 작업 방식 자체에 자리를 내어주고 우연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작가라는 주체는 서서히 사라진다. 연구자는 이를 자연성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의도와 우연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 우연을 바탕으로 작품 전체를 어떤 물질적 작용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자는 연구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자 출발점을 이마쿼크(Imaqurk)라고 부른다. 의도적 산물로 시작한 이마쿼크는 매 순간 의도에서 벗어나 자연을 지향한다. 이미지의 최소단위에 대한 호명과 상태를 이마쿼크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근거에 기반한다. 이마쿼크가 응집되어 나타나는 것이 회화적 물질인데 이마쿼크의 존재부터 회화적 물질 간의 관계까지 이 모든 과정을 자기 생성적 방식이라고 부른다. 작가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힘, 리듬, 질료가 만들어낸 체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약화되어 사라져가는 작가에 반비례하여 자기 생성적 방식은 강화된다. 이러한 강화는 작가가 기계적 그리기의 수행만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이것을 '주인 없는 그리기'라고 한다.
작가의 원래 의도는 사라지고 오직 '주인 없는 그리기'만 남게 될 때 자기 생성적 방식은 자기 동인을 얻게 된다. 그리기가 그리기의 의미가 없다는 것, 작가의 존재가 사라져야 함과 동시에 작가의 기능만 남는 것은 자연성의 순간이 용인하는 공존의 방식이다. 따라서 양자역학의 이중성(duality)이 지닌 모순적 특징은 본 연구에서 진행하는 자기-동인의 특징들과 공명한다. 이마쿼크라는 미시적 입자가 있다는 것, 응집과 축적이라는 물질의 구성 방식을 갖는다는 점, 주체가 사라지고 체계가 주도한다는 점, 이 모든 점은 자연의 물질 형성과 공통적 양상을 띠는 유사 자연(Pseudo-Nature)이라는 한 점으로 모인다.
결국 본 연구는 이마쿼크에서 시작되어 자연적 구조를 지닌 회화에 대한 연구로 귀결된다. 이러한 회화를 '그런그림'이라고 부른다. '그런그림'은 이마쿼크의 관점에서 체계에 의한 결과물이고 일반 회화의 입장에서 모방의 타깃을 형태에서 구조로 바꾼 것이며 물질의 생성 방식의 맥락에서는 자연 형식에 끝없이 수렴하고 있다. '그런그림'의 과정은 이것을 목적으로 준비된 것이 아니지만 결과는 끊임없이 자연과 연결된다. 본 연구는 이러한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여 회화의 자연물로서의 가능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