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의정부 신곡동 무연고 부부묘 가운데, 남성인 내관(內官) 묘에서 출토된 단령 흉배의 보존처리에 관한 것이다. 내관의 습의(襲衣)로 입혀진 단령은 자수(刺繡) 단학(單鶴) 흉배가 부착되어 있었다. 단령은 훼손과 열화가 매우 심각한 상태로, 보존처리를 통한 2차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보존처리와 보수를 진행하였다. 단령에 부착된 흉배는 단령에 비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여, 보수를 통해 형태를 유지하고 추가적인 손상을 방지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의정부 신곡동 무연고 부부 묘는 묘주의 생몰년은 알 수 없었다. 남성 묘에서 수습된 '通訓大夫行內侍府尙洗李公之柩'라는 명정(銘旌)을 통해, 묘주는 정6품 상세(尙洗) 내관이라는 신분을 알 수 있었다. 무연고 묘주의 생몰년은 염습의(殮襲衣)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의정부 신곡동 무연고 내관 묘의 습의인 단령과 흉배의 치수와 구성적 특징과 직물의 문양 등을 고찰하고 이와 비슷한 유물의 연대를 대조하여 묘주의 생몰년을 추정하였다. 의정부 신곡동 출토 단령의 구성은 겹단령으로, 겉감인 단령과 받침옷인 직령을 각각 만들어 겉과 안을 각각 마주보게 만들어 1벌을 완성하였다. 소매는 넓은 두리소매이고, 겉감과 안감에 각각 밑단과 섶, 수구에 선단을 대었다. 단령에 부착된 흉배는 가로 30.5cm에 세로 31.5cm 크기로 운보문단에 학 한 마리를 수놓았으며 평직심감을 넣고 테두리에 2줄의 합사를 둘러 단령과 함께 성글게 징거서 연결하였다. 이러한 단령의 구성적 특징은 이진숭(1702~1756년) 묘 출토 단령, 밀창군 이직(1677~1746년) 묘 출토단령과 유사하다. 고찰결과 출토복식 가운데 자수 학흉배의 무늬는 의원군 이혁(1661~1722년)의 단령에 부착된 흉배의 크기, 학의 머리 방향, 운문이나 수파문의 무늬와 비슷하였으나, 의원군 이혁단령의 흉배는 금사를 사용한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의정부 신곡동 출토 단령의 형태와 구성법, 흉배는 크기, 학의 형태, 보문(寶紋)의 종류, 흉배 바탕에 사용된 직물 무늬 등을 고려해볼 때 18세기 중반 이후의 특징을 보여준다.
의정부 출토 단령과 흉배의 보존처리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첫째, 사전 상태조사를 시행하였다. 단령은 크게 3부분으로 찢어져 분리된 상태로 오염이 심하다. 오염물은 흰색과 검은색 고형물로 직물 표면에 흡착된 상태였으며, 훼손으로 인한 열화가 진행되어 직물에서 미세한 가루가 발생하였다.
둘째, 보존처리는 세척과 보수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세척은 전체적인 침지 세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단령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조리개로 수압을 조절하여 오염물이 흘러내려갈 수 있도록 습식세척을 하였다. 이후 흉배 표면에 부착된 고형 오염물은, 브러시와 핀셋을 이용해 제거하고 레이온(rayon)지(紙)를 잘라 흉배 위에 놓은 뒤 분무기를 사용하여 물을 분무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세척의 결과는 부분 세척 시 사용한 레이온지에 부착된 오염물의 무게를 측정하였고, 흉배의 색차를 측정한 것을 처리 전과 처리 과정과 처리 후에 비교하였다. 세척 5회차에는 오염물이 거의 묻어나오지 않았으며, 색차는 N.B.S. 색차의 감각적 표현에서 'Much' 에 해당하는 변화를 보였다. 세척과 보수 전후 비교는 디지털 현미경 사진 촬영과 사진 촬영으로 기록하였다.
보수는 노방과 헤어실크를 사용하였으며 흰색을 사용해 보수한 부분이 육안으로 구분될 수 있도록 하였다. 노방을 흉배모양과 크기로 만들어 단령과 흉배 사이에 위치시킨 뒤 찢어진 부분을 노방에 징거서 고정하고 테두리에 두른 합사를 징근 실이 탈락된 부분과 끊어진 부분을 노방에 징거서 고정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의정부 신곡동 출토 무연고 부부 묘에서 출토된 흉배가 부착된 단령을 고찰한 결과, 피장자는 18세기 중기 이후에 사망한 정6품 내관 상세(尙洗)이다. 이는 내관이 실제로 착용했던 단령과 흉배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생각한다. 단령과 흉배는 열화와 훼손이 심한 상태로 출토되어 보존처리가 시급하였고 세척과 보수를 통하여 유물의 추가적인 손상을 막고 형태를 바로 잡아 추후 활용 가치를 높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