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楚世家」에 의하면 楚나라는 顓頊 高陽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楚나라가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周 成王이 초나라의 熊繹을 楚蠻 지역에 봉했을 때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 熊繹은 주나라 천자를 위해 제사 때 불을 밝히는 임무와 술을 거르는 풀을 진상하고, 재앙을 쫓기 위해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과 가시나무로 만든 화살을 진상하는 등 巫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巫 文化는 楚나라가 멸망할 때까지도 이어졌는데, 본 논문은 이러한 楚나라의 존속기간 중에서도 共時的 시점에 입각하여 전국시대 중후기의 巫 文化에 대해서 알아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세분하여 보면 본 논문에서는
첫째, 包山楚簡 卜筮禱祠簡 196~250호간의 명칭 문제에 대해 기존의 연구성과를 검토하여 더 적합한 명칭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196~250호간에 대하여 기존에는 祭禱라고 한 경우가 많았는데, 祭禱란 祭祀와 禱祠를 같이 말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卜筮禱祠簡은 祭禱나 祭祀가 아닌 禱祠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제시해 보고자 했다.
두 번째로 巫術활동이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세 번째로 包山楚簡 卜筮禱祠簡과 『楚辭』 「九歌」에서 볼 수 있는 전국시대 중후기 巫術의 종류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네 번째로 楚나라 특유의 巫 文化 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소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위의 내용에 대한 검토를 위해 가장 근간이 되는 자료로 包山楚簡 卜筮禱祠簡을 활용하였다. 아울러 연계성이 있는 甲骨卜辭를 활용하였으며, 包山 2호묘 묘주인 昭$$와 동시대를 살았던 屈原이 지은 『楚辭』 「九歌」 또한 활용해 보았다.
이러한 방법으로 연구한 결과
첫째, 包山楚簡 卜筮禱祠簡은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昭$$에게 질병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거나 이미 생긴 질병에 대해 병이 악화되지 않고 치유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왕의 주변에서 모시고 싶어 한다거나 작위를 얻기 바라고 질병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11개 조의 죽간에 대해서는 問病貞이라 이름하였고, 질병이 낫기를 바라며 점을 친 11개 조의 죽간에 대해서는 卜瘳貞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問病貞과 卜瘳貞에서 貞人이 제안한 禱祠를 실제로 실행하였던 205, 206, 224, 225호간에 대해서는 禱祠實行簡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196~250호 간이 왜 祭祀가 아니고 禱祠인지에 대해 9가지의 사례를 들어 禱祠라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두 번째로 巫術의 구성요소를 諸神, 占具, 貞人(巫), 犧牲과 祭品, 禱祠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검토해 보았다. 諸神에 대해 기존의 학설을 검토하던 중 后土의 土는 土地神으로써 殷代에도 숭배의 대상이었고, 宮行이나 行에게 一白犬을 희생으로 쓴 이유가 昭$$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문에 희생을 걸어 놓아 액운을 없애려고 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巫에 대해서는 전래문헌과 다른 출토 문헌인 天星觀楚簡, 望山楚簡 등의 사례에서 禱祠의 대상이기도 하고 禱祠의 이름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貞人에 대해서는 연구 과정에서 228~229호간에서만 1차 占辭와 2차 占辭에서 각각 陳乙과 五生이 점복을 주도한 것에 대하여 기존의 연구성과를 참고하고 죽간을 분석한 결과 기원전 316년 행해진 問病貞과 卜瘳貞에서는 盬吉- 陳乙- 觀繃- 五生- 許吉의 순서대로 점을 친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이에 따라 228~229호간 2차 占辭에 나오는 五生은 誤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禱祠에 대해 기존의 학설과 전래문헌을 검토한 결과 『禮記』 「禮器」에서 언급한 "祭祀不祈"와 「郊特牲」에서 언급한 "祭有祈焉, 有報焉, 有由辟焉"은 서로 모순되는 내용 같지만 「禮器」의 祭祀는 일반적인 제사를 말하는 것이고, 「郊特牲」의 祭有祈는 禱를 祭有報는 賽禱를 祭有由辟는 擧禱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근거로 $$禱와 擧禱의 사례와 대상을 분석해본 결과 $$禱는 직계조상에게 복을 기원하는 성격의 禱祠이고, 卜瘳貞의 擧禱는 재앙이나 질병을 물리쳐 달라고 하는 禱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로 包山楚簡 卜筮禱祠簡과 『楚辭』 「九歌」에 보이는 巫術의 종류를 降神巫術, 逐鬼巫術, 醫療巫術, 祈願巫術 등 4가지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降神巫術은 다시 歌舞降神, 酒食降神, 야외에서 하는 降神으로 나누어 보았다. 歌舞降神은 『楚辭』 「九歌」에 도드라지게 보이는데 이러한 춤과 노래는 包山楚簡 卜筮禱祠簡에 보이는 禱祠와 『楚辭』 「九歌」에 보이는 祭祀와의 본질적 차이 중 하나이다. 酒食降神은 包山楚簡 卜筮禱祠簡과 『楚辭』 「九歌」에 두루 나오는데 이는 신을 맞이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야외에서 하는 降神도 전래문헌을 비롯한 包山楚簡 卜筮禱祠簡과 『楚辭』 「九歌」에서 볼 수 있었다. 야외에서 降神하는 경우는 卜筮禱祠簡 중에서 卜瘳貞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昭$$에게 병을 가지고 온 귀신이 외부에서 왔기 때문에 귀신이 왔다고 생각되는 장소에 가서 攻解로 귀신을 물리치고자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한다. 逐鬼巫術은 祟의 원인과 祟에 대한 대처법으로 나누어 기술해 보았다. 祟의 원인에 대해서 甲骨卜辭의 문례를 보면 殷나라 사람들은 재앙의 출처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하기도 하였지만 어떤 신이 재앙을 줄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昭$$에게 의뢰를 받고 攻解를 제안한 貞人역시 祟의 원인이 人禹, 盟詛, 不辜, 親王父, 殤, 琥, 歲, 詛, 兵死, 水上, 溺人, 日月, 絶無後者, 漸木立 등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殷代부터 사람들은 祟의 원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법 또한 알고 있었다. 殷代에는 究寢이라는 방법을 통해 재앙을 주는 귀신을 쫓아냈고, 周代에는 儺祭를 통해서 귀신을 몰아냈다. 그리고 전국시대 중후기를 살았던 昭$$는 攻解라는 방법을 통해 祟의 원인이 되는 귀신을 쫓아내고자 했다. 醫療巫術에서는 巫醫에 대해 알아보고 昭$$가 앓았던 下心而疾, 少氣, 病心疾, 不入食, 病腹疾, 腹心疾, 上氣, $$病 등의 병에 대해 알아보고 채, 間, 恙, 已, 變, 續, 遲채, 요 등 질병의 경과를 나타내는 술어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祈願巫術에서는 앞의 3장과 4.1, 4.2, 4.3에서 인용한 기존의 연구성과와 필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196~250호간을 우리말로 해석해 보았다. 그리고 禱祠實行簡 205~206호간은 기원전 318년 石被裳이 제안한 $$禱를 시행한 것이며 224호간은 기원전 317년 爨月 己酉日에 鞏$$이 제안한 擧禱를 실행에 옮긴 것이고 225호간은 기원전 318년에 應會가 제안한 擧禱를 시행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 번째로 楚나라에서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巫風이 성행하고, 巫를 귀하게 여기는 등 楚나라 특유의 巫文化가 형성된 배경을 殷商 巫 文化의 계승, 주변 민족의 巫 文化 흡수 그리고 楚人의 다원적, 개방적 가치관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본 논문은 연구방법으로 이중증거법을 사용하였고, 이를 위해 전래문헌과 출토문헌을 분석하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전국시대 楚나라의 巫 文化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包山楚簡 卜筮禱祠簡이 楚나라의 모든 巫 文化를 포괄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시 귀족사회에서 행해졌던 巫 文化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이는 전국시대 楚 나라 巫術 문화 연구를 위해서 包山楚簡 卜筮禱祠簡은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하는 자료이며, 본 논문의 의미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 원문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