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동북아 선도제천문화의 관점에서 한국 마을제 문화의 제의시설과 제의 신격 및 무속화의 신격을 살핀 연구이다.
먼저 한국 마을제 시설을 살펴본 결과 '서기전 4000년~600년경 요동 · 요서 · 한반도(일본열도 포함)의 환호를 두른 구릉성제천시설(적석단 · 나무솟대 · 제천사 · 고인돌 · 선돌류)'을 내용적 · 형태적으로 계승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한국 마을제 시설을 '구릉성 제천시설' 계통과 '마을로 내려온 제천시설' 계통으로 나누어 보는 입장이다. 먼저 '구릉성 제천시설' 계통의 경우 입지 조건이 하늘과 가까운 산비탈 구릉지에 주로 위치하며 적석단 · 적석탑, 고인돌 · 선돌, 신목, 제천사 등의 제천시설들이 단종 또는 2종 이상이 복합되어 나타났다. 상고시대 제천의 전통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도 많이 발견되었는데 바위와 신목이 있는 제장(祭場)을 각각 '천제당(天祭堂)'으로 부르고 '천제(天祭)'를 지내는 점, 신성한 제장을 의미하는 돌돌림유적의 전통이 이어진 흔적 등은 상고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영고 · 동맹 · 무천 등 선도제천문화의 유속이 마을제 전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동북아 선도제천문화의 기준으로 볼 때 전국 각처의 구릉성 산비탈에 있는 각종 제의시설들의 신격은 언제나 하늘이었고 그 제의는 천제였던 것이다.
'마을로 내려온 제천시설' 계통의 경우 적석단 · 적석탑, 고인돌 · 선돌, 신목, 제천사, 장승, 솟대 등의 제천시설들이 단종이나 2종 복합유형도 나타나지만 3종 이상 복합되어 나타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산등성이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입지 조건의 변화와 함께 제천사의 숫자는 줄어들고 마을 입구마다 동네를 수호하고 액을 막아내는 의미의 솟대와 장승이 더해졌으며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거나 중첩되어 나타났다. 민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던 산비탈 높은 곳에서 민인들의 삶의 터전 가까이로 내려오면서 그만큼 저변이 확대되고 대중화되었음도 알 수 있었다. 세상살이에 힘든 민인들의 다양한 기원과 바람을 반영한 다채로운 형태의 제천시설이 나타나면서 2종 또는 3종 이상의 제천시설들이 서로 중첩되는 가운데 형태상으로 더욱 다변화되어 갔던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 마을제의 신격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마을 제장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설들(적석단 · 적석탑, 고인돌 · 선돌, 신목, 제천사, 장승, 솟대 등)에는 할머니 · 할아버지로 불리는 신들이 단독으로 또는 서로 짝을 이룬 부부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그 구체적인 신격을 살펴보니 여성신의 대부분은 마고삼신 계통이었고, 남성신의 대부분은 삼성 계통이었다.
다음으로 한국 마을제 문화에 나타난 신격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한국무속화에 나타난 신격도 살펴보았는데 마을제 시설과 동일하게 여성 신격의 원형은 마고삼신 계통이고 남성 신격의 원형은 삼성 계통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미신이나 샤머니즘으로 알고 있는 무속문화의 뿌리가 상고시대로부터 이어지는 고원한 선도제천문화에서 비롯된 신선사상임을 제대로 알아 단순히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기 위한 신앙 차원을 넘어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밝음의 문화를 되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