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를 거쳐 전국시대에는 전국 7웅이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날을 지새웠다. 그 속에서 백성들은 참혹한 지경에 내몰렸지만 통치자들은 힘의 논리만 앞세워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였다. 제자백가로 불려지는 당시의 사상가들은 나름의 천하를 경영하는 방책을 내세웠지만 이상에 치우친 주장일 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비자(韓非子, B.C. 280~232)는 전국시대말기의 혼란을 종식 시킬 수 있는 변혁사상을 제출하였다. 그래서 성악설에 기반해서 인간의 이기심을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법치주의를 주장하고, 역사의 발전에 따라 중앙집권적 전제군주가 통치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상했다. 그는 군주권 강화를 통한 강력한 법치주의를 실시한다면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법치주의의 실효성을 위해 군주는 법치(法治)·술치(術治)·세치(勢治)를 유기적으로 활용하여 강력한 통치권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기 위해서는 군주의 패업을 도와 천하를 통일해야 하며, 이것이 백성을 위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한비자는 봉건시대의 덕치(德治)나 예치(禮治)는 당시 혼란한 시대의 통치술로는 적합하지 않고 법에 의거한 통치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사회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그는 강력한 군주가 법에 의한 통치를 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상벌제를 시행한다면 이기적 인간의 마음은 호리지성(好利之性)에 따라 공(功)을 세우려 노력할 것이고 그 결과 국가의 부국강병은 자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비자의 엄격한 법에 의존해서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려는 경향은 신민(臣民)에 대한 폭압으로 이어져 그의 사회변혁의 구상을 단명으로 끝나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