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차의 산업화에 대한 이해와 발전 방향에 대한 역사적 고찰로, 영국이 홍차의 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보여준 차의 산업화에 대해 19세기를 중심으로 대내외적 요인을 검토하였다.
중국의 차 문화는 16세기 중반 유럽에 전해지기 시작한 이후, 인기가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특히, 영국의 차는 17세기 무역을 통해 유입되었고 18세기는 차 무역의 독점으로 대중이 좀더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며, 19세기의 자유무역주의는 영국을 차 생산국으로 전환시켜 차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17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중상주의 정책을 고수하였으며 영국도 항해조례로 차 무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차의 독점은 영국내 차 수요 증가와 재정수입을 늘려주었다. 차 수입의 증가로 발생한 대(對)중국 무역의 적자는 은(銀)의 유출로 이어져 영국 정부의 재정에 크게 위협이 되었다.
19세기 영국은 제국주의의 식민지확보 정책으로 식민지 개척이 활발하던 시기로 식민지 인도의 아편을 청나라에 불법 무역을 하게 되었다. 아편무역은 영국·청나라·인도의 삼각무역을 형성하고, 은의 역유출로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특히, 영국은 강한 중상주의 정책을 펴 해외로부터 막대한 재화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부의 축적은 차의 수입에 재투자 되었다.
영국은 식민지인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차의 재배와 제다공정의 연구에 성공하여 최대 차 소비국에서 차 생산국으로 성장하였다.
19세기 영국이 주도한 자유무역주의는 최대 차 생산지인 동시에 최대 공급지인 청나라의 차산업을 쇠퇴시켰다. 반면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기계와 과학기술은 재배방식 개선과 제다공정의 기계화, 운송수단의 발달로 영국의 차산업을 세계적인 자리에 올려놓았다.
위와 같이 19세기 영국의 차산업은 국내 경제 발전과 더불어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차 산업 발전에 기여한 다양한 요인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