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은 급속하고도 놀라운 사회적 변화 속에 침체기와 쇠퇴기를 겪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농어촌의 지방소멸 현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촌의 인구감소와 쇠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어촌이 수행해온 사회생태적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촌은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며 대를 이어 존속해 갈 공동체로 불리운다.
물론 한국 정부도 어촌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어촌사회가 갖고 있는 고유성에 기반한 정책이라기보다는 국가적 단위의 산업정책이나 균형발전의 프로젝트로, 어촌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존의 어촌사회에서 수행된 지역발전 방안에서 한계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안적 발전방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촌사회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체에 기반을 둔 지속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한 것일까. 본 연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본 연구가 주목한 것은 어촌사회가 갖고 있는 특수하고도 전통적인 사회·경제적 자원이었다. 어촌에는 도시와 농촌과 달리 '어촌계'라는 특수한 공동체 조직이 있고, 물적기반인 '공동어장'이라는 바다자원을 갖고 있으며, 어촌사회 전체에는 거친 바다와 싸우며 생겨난 어촌공동체원간의 강한 신뢰가 존재한다. 본 연구는 이 세 가지 자원이 현재 한국의 어촌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고유자원은 각각 어떻게 어촌사회에서 형성되어지고 존재하는가, 또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난 이십여 년간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발전방식으로 부상한 사회적경제의 방식을 결합하는 가능성에 대해 중요하게 살펴볼 것이다. 즉, 한국의 어촌사회가 처한 위기와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발전전략 중에서도 사회적경제는 가능성이 있는 대안인가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어촌의 사회적경제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로 ① 공동체 ② 공동자원 ③ 전통적 규범의 문제에 주목했다. 이 같은 전제 아래 본 연구는 크게 세 가지의 연구주제를 다룬다. 첫째, 어촌의 공동체성을 사회적경제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어촌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어촌계'가 어떤 경로로 형성되고 유지되었는지 살펴본다. 또한, 지역주민들에게 어촌계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어촌사회에서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둘째, 어촌의 공동자원 성격을 가진 공동어장에 대한 분석이다. 공동어장은 어촌사회에서 어촌계를 통해 관리되는 매우 특수한 물적기반인데, 이 공동어장이 단순히 어촌계원들만의 총유(總有)를 넘어 어촌사회 모두의 커먼즈로서 역할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셋째, 어촌사회의 전통적 규범 속에서 '신뢰'는 어떠한 방식을 통해 사회적자본으로 축적되는지 살펴본다. 정리하자면, 본 연구는 ① 어촌계, ② 공동어장, ③ 신뢰가 한국 어촌사회가 처한 위기를 사회적경제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구대상으로 택한 곳은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이다. 서해안에 접한 격포리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어업이 번성한 전형적인 어촌사회의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촌사회에서 고유하게 형성 및 발전되어 온 격포어촌계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현재 어촌계는 '어촌공동체'의 주축으로서 공동자원인 '마을어장'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뿐더러, 어촌사회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한 대표적인 사회공동체로 존재하고 있다.
본 연구의 본문을 통해 '어촌사회 격포리'의 어촌계-공동어장-신뢰라는 세 가지의 고유자원이 어촌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세 가지의 고유자원들이 사회적경제의 기능과 원리로서 작동할 때 어촌사회가 내생적 지역발전에 이를 수 있는지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촌계는 어촌공동체의 주축으로서 마을공동체의 성격을 띠면서 사회적경제조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전통적인 공동체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어촌계가 급속한 사회변화와 사회위기 속에서 역사적으로 유지되어온 그들만의 질서와 규칙을 지키면서 평판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앞으로 운명공동체 성격의 어촌계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금처럼 공동체를 유지해야할지 또는 배타성과 폐쇄성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개방적인 현대적 공동체로써 탈바꿈하는 것이 어촌사회의 발전을 위해 나은 선택일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확실한건 현재 어촌계는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조직으로서 향후 어촌사회의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를 실현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둘째, 어촌계의 공동어장 운영방식은 커먼즈의 성격에 부합한다. 마을어장이라는 공동자원을 어촌계라는 공동체가 일련의 사회적 규약으로서 공통의 가치를 위해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관리되어왔기 때문이다. 즉, 연대와 협동의 방식을 통해 자원의 희소성을 극복하는 커머닝을 어촌계원들이 스스로 실천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촌계는 역사적으로 쌓아온 경험과 지식 그리고 추진력을 바탕으로, 향후 어촌사회에서 커먼즈운동의 주체로서 발전해 나가야한다.
셋째, 어촌의 전통적인 규범은 신뢰에 기반한 사회적자본으로서 존재했다. 어민들간에 호혜와 연대의 원리를 토대로 신뢰는 축적되고 있었으며, 어촌의 사회적자본(제3의 자본)으로서 자리 잡았다. 또한, 어민들의 다양한 경험들은 어촌사회에 신뢰를 통해 단순한 응집의 차원을 넘어서, 상호호혜의 방식으로 어촌사회 전체로 확대됐고, 결과적으로 사회적경제의 가치를 추구하는 집합적 행위를 위한 역량을 제고했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어촌사회는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에 매우 근접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촌계, 공동어장, 신뢰 등의 지역 내부에서 동원이 가능한 고유자원의 존재이며, 이들을 활용하여 사회적경제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생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다.
또한, 전통적 공동체인 어촌계가 사회적경제조직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공공의 역할이 수행되고 이 과정에서 어촌사회가 그 의미를 인식한다면 어촌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로 가는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촌사회의 커먼즈가 내부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자본과 상호작용한다면 역량을 개선함과 동시에 지역발전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의 한계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어촌사회 격포리'라는 단일적 사례분석을 진행함으로써 심층적이고 보다 세밀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연구결과에 대한 일반화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어촌을 비롯한 지역에서 사회적경제의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은 아주 광범위하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 다루지 못한 세부영역들에 대한 심층적인 사례연구들이 계속 이어져야한다.
본 연구의 한계점을 보완한 후속연구들을 통해 사회적경제를 기반으로 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발전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