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와 퍼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놀이이다. 만약 누군가 이 두 가지 놀이를 소위 '놀이계의 고전'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이에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플루서의 이미지 현상학은 바로 이 수수께끼와 퍼즐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수수께끼가 씨줄이라면 퍼즐은 날줄이 되어 그의 이미지 현상학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철학적 논의를 단단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플루서의 철학적 논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주체로서의 의식을 갖게 된 순간 자연적 존재에서 반자연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인간'일 수 있는 근거는 제2의 자연으로서 반자연적인 인간의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그 문화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이 정보를 위해서 정보에 의해 이뤄진 정보의 저장고이며, 이 저장고의 의미는 이 정보가 전달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문화는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파악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 인하여 긍정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플루서의 이미지 현상학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론이며,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매체를 다루고 있는 매체철학인 것이다.
플루서는 자신의 이미지 현상학에서 '역사'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주도적 매체는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수수께끼와 같은 매체를 이용한 철학하기는 숨겨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논증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함께 패러다임의 큰 변화가 생겨났고, 변화된 새로운 시대는 더 이상 수수께끼의 시대가 아닌 퍼즐의 시대임을 보여 주고자 한다. 퍼즐 놀이를 함에 있어 수수께끼 놀이의 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에 대하여 보여줌으로써, 퍼즐 놀이에서는 어떠한 전략으로 그 놀이를 향유해야하는지에 대하여 논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플루서는 이러한 논증을 위해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을 수용하여 정해진 답을 찾아가기 위한 철학적 여정이 아닌,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해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문화와 그것을 이루고 있는 정보라는 것 또한 찾아야 하는 인간실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되어야 하는 인간실존에 대한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