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창 '미지의 위협'이었던 2020년 8월. 광복절 옥외집회를 금지한 서울시의 처분에 대해 시민들은 법원에 최종적인 판단을 요구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에만 9건의 집행정지 신청이 접수됐는데, 2건은 인용되고 나머지 7건은 기각됐다. 일시·장소가 같고 집회 신고 인원이나 목적 등 실질이 유사한 집회들이었음에도 판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것이다.
사실상 동일한 사안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결론이 도출되는 현상은 법형식주의의 주장과 배치된다. 법형식주의에 따르면 판사의 역할은 구체적 사건에 맞는 법원칙을 발견하고 법적 추론을 거쳐 도출된 하나의 결론을 확인하는 데 그친다. 즉 법형식주의적 해석대로라면 같은 9개 사건의 결론은 같았어야 한다. 그러나 위 사례는 판사가 법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사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재량의 영역을 상정하게 한다.
사법 현실과 동떨어진 법형식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법현실주의는 법이 자기완결적이거나 확정적이지 않으며 사법적 결정에서 유일한 근거가 아닌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고 한다. 판사가 법 이외의 다른 사회적 사실관계를 고려함은 물론이고, 해당 요소를 판결에 반영하게 될 때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향 등에 따른 판단을 반영하며 법을 형성·창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옥외집회 금지 처분에 대한 법원의 집행정지 심리 결과들을 토대로 판사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사법 판결의 경향성을 살펴봤다. 감염병 예방을 사유로 집회 금지 처분이 처음 이뤄진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회복 체계로 전환된 2021년 10월까지 나온 68건의 집행정지 결정들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 법 이외에 실제 판사의 판결을 이끈 요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68건 판결문에 적시된 각 사법 판단의 근거들에 대해 비교·분석을 수행했다.
그러나 판사의 재량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논리적 일관성과 타당성은 중요하다. 특히 본 논문이 분석한 집회 금지 처분의 집행을 멈출지 말지를 다투는 사건은 그 결론에 따라 사실상 임박한 집회의 개최 여부가 갈린다는 점에서 본안인 취소소송을 대체하는 종국적 성격이 있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또한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권한이 극대화된 행정부의 집회 금지 처분에 대해 법원이 이를 사실상 승인(집행정지 기각)하거나 직접적으로 제동을 거는(집행정지 인용) 판단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분석 결과 코로나19 시기 옥외집회 금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여부 판단에서 판사들은 법 이외의 많은 요소들을 반영했다. 특히 판결문에 공통적으로 적시된 여러 사회적 사실에 대해 판사마다 고려의 정도와 맥락이 달랐다는 점에서 서술되지 않은 가치판단이 결론의 차이를 이끌어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같은 일자에 신고된 유사한 집회 중 어느 것은 금지 처분이 풀리고 어느 것은 여전히 금지됐다. 결론이 엇갈린 것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결론이 도출되기까지의 설명마저 충분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국민의 집회의 자유는 아무개 판사의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되며 근본적으로 제약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판사의 재량이 '자의적인 판단'의 길로 빠지지 않으려면 적절한 통제가 필수적이다. 다만 그 통제는 또 다른 법률을 생성해 재량을 제한하려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의 근거와 결과 간의 상관관계를 최대한 투명하게 규명하고 납득 가능한 논리에 따라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정치를 비롯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사법화가 심화됨에 따라 사법 재량이 정의롭고 공정하게 작동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4차 산업혁명 등 판결에서 고려될 수 있는 법외적 맥락도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판사가 자신에게 주어진 설명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직관'이 확장되고 심화될 수 있도록 스스로 채찍질함은 물론이고 사법 시스템의 변화도 동시에 요구된다. 이를 통해 법은 본질적인 불확정성에도 불구하고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법치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