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주의(Ecology, Ecologism)'라는 논제는 생태주의자나 과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생태(eco)는 곧 생명을 의미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생태적, 생태주의적인 삶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이 생명으로서의 삶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에서 생계를 위해 일상적인 노동에 몰두해야 하는 사람은 생태적 삶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 어떤 사람은 생태적 삶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본주의가 이끄는 대로 소비자 문화에 빠져 산다. 또한 권력을 구성하는 사람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소비 욕망을 생산하는 주체가 될 뿐, 생태적 삶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생태적 존재이다.
모든 생태적 존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호 보완 관계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모든 삶-인간과 비인간-이 지닌 생존의 기본적 전제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다른 생명체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 주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비인간 존재는 '타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억압하는 인간의 행동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태주의적 실천은 생태계를 살아가는 존재의 상호연결성에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타자성의 양태를 가시화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작한 본 연구는 연구자의 작품이 그러한 생태주의적 언표 행위이자 새로운 관계 맺음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분석하고, 실천적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기 위한 고찰을 중심으로 한다. 연구자가 주목한 사안은 '감각적인 기계로서의 예술이 촉발하는 정동적 효과'와 '예술작품과의 만남'이라는 사건에서 생산되는 새로운 주체성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 연구는 펠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 1930~1992)의 생태주의 미학에 주목한다. 기계론과 기호론은 그의 독특한 정치-생태주의 사상의 근간으로써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가타리의 기계론은 모든 존재를 수평적인 연결망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로 파악하고, 기호론은 기계의 다채로운 비기표적 언표 행위에 초점을 둔다. 나아가 그는 자본주의 권력 구성체의 기호적 예속 상태를 벗어난 주체성 생산을 위해서 비기표적 기호 영역에서 변이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 '예술'은 보편적인 견해에서 탈영토화하는 특성을 내재하는 새로운 주체성 생산의 실험적 장으로 지목된다.
1970년대부터 나타난 환경예술, 대지예술 그리고 자연예술 등은 인간과 자연, 예술의 관계를 재배치하는 실험을 전개함으로써 여러 가지 생태적 예술 실천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은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적 면모를 지님과 동시에 생태 문제의 복잡성을 간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2000년대에 들어 대두된 인류세 담론과 신유물론 패러다임은 예술 영역에서 탈인간중심주의적 실험을 촉발해 기존의 생태예술·생태주의 예술의 개념을 확장하였다. 즉, 생태주의적 예술 실천은 작품의 재료나 장소, 고발성 등의 특징을 넘어 생태계와 생명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존재에 대해 느끼고 사고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에 따라 연구자는 동시대 작가 알렉시스 록맨(Alexis Rockman, 1962~)과 로리 호긴(Laurie Hogin, 1963~)의 작품을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연구작품 분석으로 나아간다.
연구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은 비인간 캐릭터와 텍스트 기호이다. 먼저 연구자가 창작한 비인간 캐릭터는 '기계론적 의인화', '탈영토화하는 얼굴성', '되기'라는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묘사된 특정 동·식물의 지각과 인간적 특징을 결합한 캐릭터는 귀엽기만 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재 안에 내재한 비인간성을 드러내는 기호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기호 작용은 인간이 망각하고 있는 생태적 삶에 대한 자각을 이끌어 낼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어서 연구작품에 배치된 단어·짤막한 구문 등의 텍스트 기호를 생태주의적 선언이자 소수적 언표 행위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텍스트란 '읽히거나 읽는 것'이자 '감각이 되는' 기호이다. 게다가 어조나 조형성 등의 비기표적 효과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기표적인 의미전달을 비롯하여 정동을 수반한다. 또한, 소수자의 언표 행위로서 텍스트는 특별히 정치적·집합적 함의를 의도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정치적이며 집합적이다. 그러므로 연구작품의 텍스트는 연구자의 '생태주의적 메시지 전달'이라는 의도를 넘어 생태계의 소수자가 내는 소리가 된다.
연구작품의 구성 요소는 재료의 물질적 감각과 상호 작용하여 새로운 공간을 형성한다. 특정 동·식물의 지각이나 생명체의 감각은 작품의 색 배치와 공간 구성에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과정에서 연구자는 단순히 제작자에 머무르지 않고 기계적 배치의 부분으로 작품의 생성에 참여한다. 그리고 명화나 대중 매체의 이미지를 빌려온 일부 작품은 '패러디'라는 장치를 설치하여 원본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내용을 뒤틀고 존재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려는 시도이다.
마지막은 본 연구의 핵심 문제로 제시한 "연구작품이 생태주의적 예술 실천일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연구작품의 실천적 측면은 기존 자본주의적 일상에서 벗어난 정동적 경험 가운데 타자와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고자 한 데 있다. 연구작품에서 나타나는 비인간 캐릭터는 생태적 존재의 삶을 대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표현하고자 한 바는 사회생태학적 그리고 정신생태학적 위기를 살아가고 있는 멸종 위기 종(種)인 인간이다. 결국은 생태 위기의 모든 문제와 그 위협이 곧 인류가 당면한 현실이라는 의식을 촉구한다.
본 연구는 앞에서 언급한 분석을 토대로 연구작품이 연구자의 주체성을 생태주의적인 방향으로 형성해 나간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러나 연구작품이 진정 생태주의적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집단적 주체성 변화를 촉발하는 특이점으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연구자의 작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수립하게 한다. 즉, 더 많은 '소수자-되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수성과의 다양한 관계 맺기 전략이 필요하며 더욱 효과적인 정동을 생산하는 예술작품에 대한 학제적 연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