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등학생은 주된 삶의 공간인 학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주도적인 진로 설계와 실천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비롯하여 학교 및 학부모의 요구가 복잡하게 얽힌 조건과 맥락은 학생이 자신만의 진로내러티브를 의미 있게 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학교진로상담은 '점수'에서 '이야기'로 진로에 대한 관점을 확장하여 과거의 경험을 의미 있게 해석하고 미래를 구성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진로구성상담에서 주요한 목표 중 하나가 내러티브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다. 내러티브를 통해 분절되고 의미 없던 사건들도 새로운 의미가 형성되고 새롭게 형성된 의미는 미래의 진로를 재구성해 나가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내러티브는 자전적 추론을 통해 모순된 관점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일치하지 않은 진로 주제를 통합하고 창조하는 데 중요한 진술 방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러티브 접근은 자전적 글쓰기나 말하기 등을 통해 구현되기에 정신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긴 시간이 소요되어 인지부하의 문제로 이어진다.
예컨대, 진로구성상담에서 자전적 이야기와 글쓰기는 미래의 꿈이나 목표를 상상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서 실제 상황처럼 생각하고 그 상황을 이미지로 떠올리는 심상과 연결된다. 이미지는 시각적 심상이란 점에서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여 움직임까지 상상하도록 촉진할 수 있기에 수행을 증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언어의 부족이나 인지부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내러티브를 위해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법이 오랜 기간 지지되어 왔다. 실제 진로상담에서 마인드 매핑(mind mapping), 이미지(guided imagery), 공상(daydreaming) 등의 개입 방법이 소개되었으며, 시각적 접근인 콜라주 기법도 과거, 현재, 잠재적 미래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진로내러티브를 개발하는 데 그 효과가 검증되었다.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와 이모티콘 등의 시각적 콘텐츠를 활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삶을 고려한다면 시각적 이미지는 고등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에 걸쳐 자전적 기억의 표상들을 수월하게 인출하고 과거 현재 그리고 잠재적 미래를 재구성하도록 돕는데 유용한 매체임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긍정정서를 촉발하여 진로내러티브 구성을 촉진하는 진로이미지카드를 개발하고, 이를 타당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은 연구 목적에 따라 선정한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진로이미지카드는 어떻게 개발되어야 하는가? 둘째, 개발된 진로이미지카드는 타당한가?
연구문제를 달성하기 위한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미지카드 개발에 관한 선행 연구가 부재하여, 직업카드와 진로가치카드 개발 절차를 분석하여 이를 기반으로 진로이미지카드의 개발 모형과 절차를 수립하였다. 진로이미지카드를 개발하는 구체적인 연구절차와 방법은 크게 두 개의 차원으로 설계하였다. 첫 번째 차원은 이미지 디자인의 질료가 되는 단어의 개발 과정으로써, ① 시중에 개발되어 있는 교육 및 상담카드의 단어 목록을 분석하고 ② 이미지의 질료가 되는 단어 목록을 선정하고 ③ 자문위원의 검토를 거쳐 최종 단어를 선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차원은 이미지 개발 단계로써, ① 이미지 개발 방침을 마련하고 ② 단어 목록에 적합한 이미지의 초안을 시각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③ 자문위원의 검토를 통해 진로이미지카드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진로이미지카드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방법은 세 가지 측면에서 시행하였다. 첫 번째는 전문가 패널을 통한 델파이 검증이고, 두 번째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개발한 진로이미지카드를 활용한 진로프로그램의 시행 전과 후의 긍정/부정정서의 변화를 t-검증하는 것이며, 진로이미지카드를 활용해 본 경험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여자의 활동 결과물을 토대로 진로이미지카드의 상담적 기능에 대해서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이미지를 디자인하기 위해 먼저 이미지의 질료가 되는 '단어'를 개발하였다. 이를 위해 선행 연구와 유사 도구 분석, 그리고 진로적응력척도를 분석하여 60개의 단어를 선정하였다. 그 후, 2차례의 자문위원 평가를 거쳐 단어를 검토하였으며, 13개의 단어(22%)를 수정 및 변경하여 최종 단어를 선정하였다. 이후, 진로이미지카드의 '이미지'를 개발하기 위해 최종 선택한 60개의 단어에 해당하는 이미지의 초안을 디자인하였다. 총 3회에 걸쳐 이미지 개발 자문위원의 온라인 평가를 진행하고, 60개 이미지 중에서 27개(45%)의 이미지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이미지 디자인을 완료하였다. 이때 객관적인 검토를 위해 ① 이미지 내 단어의 내포성, ② 이미지와 긍정정서의 연계성, ③ 이미지의 풍부한 연상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진로이미지카드 평가 척도'를 마련하였다. 진로이미지카드의 규격은 현장 의견을 수렴하여 가로160mm x 세로140mm의 크기로 결정하였다.
다음으로 개발된 60개의 진로이미지카드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첫째, 11명의 전문가가 델파이 패널로 참여하여 평가를 진행하였다. 먼저 60개의 진로이미지카드 초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1차 델파이 평정은 Likert 7점 척도에서 ① 이미지 내 단어의 내포성(평균=5.88, CVR=0.78), 이미지와 긍정정서와의 연계성(평균=6.19, CVR=0.81) 및 이미지의 풍부한 연상 가능성(평균=6.17, CVR=0.80)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세부 항목으로 CVR 값이 0.59 미만인 5개의 항목에 대해 검토 및 수정 후 2차 델파이 진행하였다. 수정된 5개의 진로이미지카드에 대한 Likert 7점 척도에서 평균=6.16, CVR=0.86으로 나타났다.
둘째, 1학년 고등학생 202명을 대상으로 개발한 진로이미지카드를 활용하여 진로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개발한 진로이미지카드의 ① 긍정정서 및 부정정서에 대한 효과성 검증과 ② 참여자의 만족도 검사를 시행하였다. ① 효과성에 대한 검증으로 긍정 및 부정정서를 사전-사후검사를 실시하였다. t 검증 결과, 프로그램 적용 전과 후에 평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긍정정서는 평균값이 53.54에서 56.47로 상승하고, 부정정서는 평균값이 49.62에서 48.95으로 감소함으로써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다. ② 진로이미지카드 활용에 대한 참여자의 만족도검사에서 리커드 5점 척도를 사용한 3개의 객관식 문항의 평균점수가 높게(M=4.22, SD=0.83) 나타났다. 개방형 응답에서는 진로이미지카드가 '내러티브의 촉진'과 '긍정정서 고양' 및 '자기상에 대한 상상과 구체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이 나타났다.
셋째, 참여자가 제출한 활동 결과물들을 분석하여 개발한 진로이미지카드의 타당성 및 효과에 대해서 검증하였다. 참여자의 활동 결과물을 분석한 결과 '은유를 통한 자기표현'과 '공감을 통해 '함께' 이야기하기', '이미지적 체험을 통한 감각 형성하기' 등으로 세 개의 테마를 도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본 연구에서 개발한 진로이미지카드의 상담적 기능에 대한 논의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진로구성상담에서 감각을 형성하는 것(Sense Making)은 이미지적 체험을 바탕으로 정서적 자기구성과 맥을 같이한다. 기존의 진로상담에서 자기구성은 경험에 의미를 이해하거나 규명하도록 하는 인지적 방식이 주를 이루면서 정작 자기구성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내면의 이미지 자체에 대한 체험은 소홀히 다루어진 측면이 있다. 진로이미지카드를 활용하는 진로상담은 이미지 자체로부터 파생되는 정서나 느낌을 체험할 수 있게 하여 정서적 감흥을 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는 '필요'로부터 '목표'로 가는 캐릭터 아크의 구성을 촉진하기에 감각 형성(Sense Making)에 유용하다.
둘째, 진로이미지카드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구성행위'라는 점에서 진로이미지카드는 이미지 기반의 내러티브 구성 능력 신장에 도움이 된다. 내담자는 경험적 기반을 토대로 진로이미지카드를 접하고 선택하기에 내담자가 생성한 이미지는 단순한 의미망의 형성에서 머무르지 않고, 개별 이미지들을 연결하여 개연성을 확보한다. 서로 달라 보이는 요소들을 통합하고, 인지를 확장하여 창의적인 사고를 견인할 뿐 아니라, 개인의 경험에 대한 새로운 묘사를 발견하고 조직한다.
셋째, 진로이미지카드는 긍정적 상상의 사고 추동을 돕는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요구에 따라 진로이미지카드를 보면서 이미지들을 생성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내담자의 능동적 참여와 상상력이 요구된다. 개별 내담자에 따라 동일한 이미지를 대할 때 생성하는 이미지나 체험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이미지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내담자의 상상력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따라서 내러티브를 통해 구성하는 의미의 세계가 단순히 이미지 내에 그려진 세계를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 창조적인 '재구성' 단계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진로구성이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진로이미지카드를 타당한 절차로 개발하였고, 한국에서 진로구성상담을 지원하는 첫 도구로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진로이미지카드가 시사하는 바는 진로내러티브의 구성을 촉진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서 가치 있으며, 사용이 쉽고, 창의적이며 유연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고등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내담자를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