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 시기 안보 개념은 전통적 안보 외에 인간안보와 같은 비전통 안보(non-traditional security)가 중요해지면서 포괄적 안보(comprehensive security) 개념으로 더욱더 중층적이고 복합적 양상을 띤다. 특히, 주권국가 단일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면서 인간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 이하 유엔개발계획)은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에 인간안보 개념을 처음 발표하였다. 인간안보를 통해 안보의 주체를 기존 국가에서 인간 개인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이는 군사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기존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에 대해 보완하고, 인간안보의 주요 구성요소인 개인과집단을 고려한 안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유엔(UN)의 평화활동(Peace Operation)은 인간안보를 실천하는 한 형태로써 안보의 변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초기 유엔의 평화활동은 휴전감시, 조사, 보고 등의 전통적 임무에 초점을 맞추어 휴전 상태를 유지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최근 평화활동의 주요 임무는 평화와 안보, 인권, 개발의 여러 이슈를 "다양한 행위자"와 함께 포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부터 평화활동을 수행하는 유엔 임무단의 위임명령(mandate)에도 민간인 보호(POC: Protection of Civilian, 이하 민간인 보호)와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ssistance)의 임무가 부여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다양하고 지속적인 노력과 개혁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민간인 보호 실패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즉, 분쟁지역의 주민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의 목표와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 간의 괴리감은 여전히 표출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그동안 "유엔의 노력과 임무 성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왜 빈곤과 공포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문제인식과 "유엔 평화활동은 왜 인간안보 실천에 실패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에 본 논문의 목적은 유엔 평화활동에서 인간안보를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합리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평화활동에서 인간안보를 실천하기 위해서 "주민의 참여"가 임무단의 활동에 반영되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인간안보의 실천적 유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하향식 접근방식(top-down approach)이 아닌, 상향식 접근방식(bottom-up approach) 으로 지역주민들의 요구(needs)를 업무 프로세스 전 과정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안보의 실천원칙을 연구한 유럽연합의 인간안보 연구그룹과 이라크 미국대학의 평화·인간안보센터, Alexander(2022) 모두 인간안보 실천의 주요 핵심을 "주민의 참여"로 규정한 바 있다. 이처럼 인간안보에 대한 접근은 분쟁, 회복, 지속가능성 등 "주민의 관점"에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인간안보 실천을 위해 주민참여가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이와 유사한 선행연구를 검토해보면, 유엔 평화활동에서 "인간안보"를 대상으로 한 연구물은 극히 드물다. 더욱이 국내·외 분쟁지역 현장에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현장의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본 논문에서는 레바논 지역주민들이 평화활동 전반에 참여하고 있는지, 그들의 요구가 업무 프로세스에 잘 반영되고 있는지, 주민들은 유엔 임무단의 인간안보 활동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현장에서 인간안보를 실천하는데 어떠한 문제와 딜레마가 존재하는지 등을 UNIFIL(United Nations Interim Force in Lebanon)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해보자 한다. 하지만 다양한 행위자와 복잡한 사회현상, 분쟁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연구의 결과를 정량적 수치로 표출하고 환원하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유엔의 평화활동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행위자들과 다양한 현상들의 복잡한 관계를 최대한 심도 있게 연구하고 고찰하기 위해서 "질적연구방법"을 활용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방법을 통해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UNIFIL은 위임명령 이행에 있어서 제한적으로 주민의 참여를 시도하였지만, 지역주민들의 요구가 적절하게 반영되도록 실질적인 방법을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점이 들어났다. 특히, UNMISS(United Nations Mission in South Sudan, 이하 UNMISS)의 주민참여 노력과 프로그램을 비교해 볼 때, 다양한 방안을 통한 적극적인 노력을 수행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지역주민과 평화유지군과의 인간안보 위임명령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상호 요구하는 "하위 인간안보 범주"에 대해서 차이가 존재하였다. 강조하자면 UNIFIL은 지역주민의 참여에 대해 소극적이었고, 잘못된 접근과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인간안보를 효과적으로 실천하고 대응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UNIFIL의 인간안보 실천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수준에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첫째, "유엔본부 수준"의 인간안보 실천적 방향성이다. (1) 유엔본부와 임무단(mission, 이하 임무단) /병력공여국(TCC: Troop Contribution Countries, 이하 병력공여국) 간 정책적 괴리를 최소화해야 한다. (2) 안보·인권·개발 전(全) 분야의 협업을 위해 레바논특별조정관(UNSCOL: United Nations Special Coordinator for Lebanon, 이하 레바논특별조정관)과 UNIFIL 사이의 단일 컨트롤타워를 신설해야 한다.
둘째, "임무단 수준"의 실천적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1) "경제안보"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2) 지역별 "개발" 불균형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3) 유엔 CT(Country Team) 및 NGO, IO 등과의 협업을 증진해야 한다. (4)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방법론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병력공여국 수준"의 실천적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안보를 각 국가 정책으로 채택하고, 적극적인 실천 노력을 해야 한다. (2) 평화활동에 참여하기 전에 분쟁국가에 대한 인간안보 관점의 분석이 요구된다. (3) 지역주민의 역량강화(empowerment)를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본 논문은 인간안보 위협이 증대되는 시점에서 시의적으로 분쟁지역에서 유엔개발계획에서 제시했던 인간안보를 실천하기 위해 레바논 "지역주민"을 핵심 행위자로서 설정하여 분쟁 현장에서 진행된 몇 안 되는 연구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한계점이 존재한다. 첫째, 레바논을 대상으로만 설문, 인터뷰, 참여자 관찰을 진행함으로써 다른 임무단에 적용하고, 일반화하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둘째, 필자의 개인 성향과 역할이 임무를 분석하고 자료를 수집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UNIFIL의 군사참모부 예하에 소속(2022년 3월 ~ 2023년 2월 / 1년)되어 근무하였고, UNIFIIL은 소위 군사 임무단으로 불리어질 만큼 군사적 성격이 강한 임무단 중 하나다. 본 연구에서 강조했듯이 평화활동의 핵심활동으로 안보, 개발, 인권 등이 고루 고려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후속연구를 위한 발전방안을 제시해 보면 첫째, 인간안보의 위협이 점차 증대됨에 따라 평화활동에서 인간안보를 고려한 연구들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평화활동에서 인간안보가 실천되는 현상과 주민들의 인식, 만족도, 안보위협 등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현장"을 반영한 연구들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측정할 수 있는 적절한 측정도구가 개발되어야 한다. 측정도구를 개발하여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인간안보 위협과 지역주민들의 요구가 평화활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지속 반영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