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거듭된 일제의 수탈에 대항한 제주 해녀의 생존권 투쟁이다. 강관순 선생은 야학을 통해 해녀들을 교육시켰을 뿐 아니라 부당한 처우를 위로하기 위해 〈해녀의 노래〉를 작사하였고, 이 노래는 90여 년이 지나도록 해녀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시대를 기록하는 노래가 되었다.
대한민국 최남단 섬인 제주도에서 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난 것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여성 1천 명이 넘는 대규모 항일운동은 역사적으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역사기록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항일운동의 주체는 하층계급으로 취급받던 '해녀'라는 '여성'이었다. 이율배반적으로 〈해녀의 노래〉는 일본 유행가의 곡을 차용한 점과 작사를 한 강관순 선생의 사회주의 운동의 행보로 인해 광복 이후 반갑지 않은 현대기록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도 1932년 제주도 해녀들의 항일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운동이 결국 여성인권운동으로 확장된 점은 유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의 객관적 지표를 위해 동시대 세계 여성인권운동의 배경과 항쟁가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리고 있는 영국의 〈여성행진곡〉(March of Women), 미국의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그리고 현재 불리지 않지만 〈해녀의 노래〉처럼 비밀리에 생존과 저항을 위해 불렀던 폴란드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트레블링카의 거짓말〉(There Lies Treblinka)이 있었다.
일본의 〈동경행진곡〉을 차용한 〈해녀의 노래〉의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 동시대 대한민국의 문화적 배경과 항쟁가의 유입 흐름, 특별히 일본노래를 차용한 항쟁가를 살펴보았다. 유행가나 명곡 등을 개사해서 부르는 것은 당시 일반적인 사례였다. 항일목적을 가졌던 독립군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노래까지 차용해 독립군 군가로 불렀다.
4장에서는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전반적인 배경과 강관순 선생 및 여성항일운동가를, 5장에서는 〈해녀의 노래〉의 역할을 서술하였다. 항일운동 현장의 해녀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녀의 노래〉가 항쟁을 준비하며 미리 불렸고, 옥중에서 전달된 것은 추가된 4절임을 알 수 있었다. 끝으로 노래의 존재 목적과 가사의 중요성을 통해 항쟁가의 시대적 역할을 발견했다.
성공적인 인권운동 배경에는 '항쟁의 노래', '저항의 노래'가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제주해녀항일운동과 성공적인 항쟁에 활용된 〈해녀의 노래〉를 폭넓게 재조명하여, 제주해녀항일운동에서 드러난 '여성', '인권', '노래'의 가치가 세계 여성인권운동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