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고구려의 樂浪·帶方郡 故地 영역화 이후 조영된 고분 내 문자 자료 및 고분 회화에서 나타나는 중국식 문화 전통의 출현에 대한 검토를 목적으로 했다. 이를 위해 4C 이후 화북의 유이민 파동부터 5C 중·후반까지 전 중국적 범위에서 확인되는 중국식 관호 자칭 현상을 주목했다. 그 결과 樂浪·帶方郡 故地 사례 또한 당대의 동아시아적 범위에서 전개되었던 유이민 이동과 관련한 측면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구 방법으로는 문헌 기록과 고분 문자 자료, 고분 회화를 주요 자료로 활용했다. 이들 자료는 4C 초 ~ 5C 중·후반대 전 중국적인 범위에서 형성되었던 사회·문화적 정서를 설명하는 단서로 역할을 한다. 먼저 문헌 기록에서 4C 유이민 이동과정에서 나타난 중국식 관호 자칭 사례를 통해 그것이 어떠한 목적에서 활용되었는지 보았다. 다음으로 고분 문자 자료 및 회화를 통해 중국식 문화 전통의 추구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종합한 내용을 바탕으로 樂浪·帶方郡 故地의 고분 문자 자료 및 회화에 대한 검토를 진행했다.
2장에서는 4C대 유이민 이동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중국식 관호 자칭 사례를 확인했다. 문헌 기록과 고분 문자 자료 및 회화를 토대로 종족 구분과 관계없이 주민집단 및 유이민의 결집 과정에서 전 중국적 범위에서, 당대 중원왕조와 직접적인 관련 없이 기존의 사회·문화적 전통을 활용하여 나름대로 정치·사회적 질서를 수립하려는 의도에서 활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중국식 문화 전통에 대한 추구는 집단 내부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목적과 연관되었던 점을 추정할 수 있다.
3장에서는 樂浪·帶方郡 故地에서 중국식 문화 전통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배경과 목적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 4C대 발생한 유이민의 이동과정에 대응하여 이들에 대한 우대 정책을 실시한 몇몇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를 근거로 고구려 또한 다른 국가와의 경쟁을 위해 유이민 우대 정책을 실시한 것, 나아가 고구려의 용인하에 樂浪·帶方郡 故地의 주민집단들은 중국식 문화 전통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이해를 드러낼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선 연구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의의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중국계 망명인들의 중국식 문화 전통 활용을 통해 중국식 관호 자칭의 외형에 고구려식 지배 질서가 중첩되고 있는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덕흥리 벽화고분의 문자 자료와 회화에서 고구려식 연호가 활용되고, 중국식 관호와 고구려식 관등이 기재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둘째, 樂浪·帶方郡 故地 영역화 이후 중국식 문화 전통의 지속은 당대 동아시아적 현상이었던 유이민 파동에 대한 고구려의 대응을 규명할 수 있었다. 즉 주변 국가들이 시행했던 유이민 우대 정책과 마찬가지로 유이민 확보를 목적으로 이와 같은 정책을 실시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가 용인했던 중국식 관호 자칭의 의미를 유화적 통어 정책의 일환으로써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