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실천적 지혜는 목적의 내용을 제공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1144a7-9에서 '성격적 탁월성은 목표를 올바르게 만들며, 실천적 지혜는 이 목표에 이바지하는 것들을 올바르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여전히 다음의 물음을 남긴다. "목적의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성격적 탁월성인가, 아니면 실천적 지혜인가?"
본 논문은 이 질문에 대한 기존의 대답을 크게 셋으로 나눈다. 소위 강한 주지주의, 약한 주지주의, 비주지주의가 그것이다. 강한 주지주의는 실천적 지혜가 숙고를 통해 목적의 내용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약한 주지주의는 실천적 지혜가 숙고가 아닌 이성적 능력, 이를테면 지성을 통해 목적의 내용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비주지주의는 실천적 지혜가 목적의 내용을 제공하지 않으며, 성격적 탁월성이 목적의 내용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주지주의적으로 해석해야 할 추가적인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근거란 실천적 지혜는 품성상태로서, 오직 영리함(deinotēs)의 능력으로부터 생겨나는데, 영리함이 목적의 내용을 제공하는 기능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6권(=『에우데모스 윤리학』 5권) 1143b28-33에서 성격적 탁월성과 실천적 지혜의 생성과정에 대한 난제를 다룬다. 그런데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미 『니코마코스 윤리학』(혹은 『에우데모스 윤리학』)의 전반부에서도 제시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 난제를 그의 윤리학 탐구의 전체 구성 안에서, 뒤늦게 다루고 있는 셈이다. 본 논문은 그 이유를 그가 6권(5권)에서 탁월성의 생성과정에 대한 설명을 완결지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해당 난제에 대한 해결은 6권(5권)에서 제시된 실천적 지혜에 관한 설명으로 인해, 순환논증에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 순환논증까지 해결하여 탁월성의 생성과정에 대한 설명을 완결짓기 위해, 해당 난제를 다루는 것을 뒤로 미뤄두었다. 그렇다면 그가 6권(5권)에서 순환논증을 해결하면서, 실천적 지혜가 품성상태고, 영리함이 그에 대한 능력이라고 설명할 때, 그는 실천적 지혜는 오직 영리함의 능력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리함은 목적의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실천적 지혜 또한 목적의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주장을 통해, 탁월성의 생성과정에 대한 앎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탐구의 구도에 비추어 볼 때도, 비주지주의적 해석이 더 적절하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