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철학사에서 실존주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고유한 가치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주체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세계대전 이후 서구 이성주의에 대한 불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구체적으로 '인간의 실존은 무엇인가'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고정된 주체성이 상실된 현대사회에서 실존의 의미는 사회적 관계에 따라 늘 유동적인 불완전성 그 자체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모호한 인간 실존에 대한 개념이 시각예술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찰스 샌더스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의 기호학을 적용시켜 분석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현대미술은 단순히 가시적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수사적 발언을 다층적인 관점으로 읽어내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호학적 접근을 통해 예술작품을 시각기호로 해석한다면 보이지 않는 예술의 미적가치를 포착할 수 있다. 또한 불확정적이고 다의적인 현대 미술의 의미작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도상, 지표, 상징으로 나눠지는 퍼스의 기호학은 기호와 대상체 사이의 상관관계를 기호의 표상적 특성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따라서 다의적인 의미가 내포된 예술작품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표상성이 필수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퍼스의 삼범주는 예술작품의 중첩된 시각기호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유의미한 해석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논리를 근거로 도상, 지표, 상징으로 나눠지는 퍼스의 삼범주를 토대삼아 실존의식이 확장된 1950년대 이후 미술을 중심으로 인간의 실존성이 표현된 미술작품을 분석하였다. 먼저 '도상'으로는 기호와 대상 사이의 시각적 유사성을 공유하는 안토니 곰리의 보편적 인간형상과 개인과 집단의 관계 맺기에서 정의되는 인간의 실존을 표현한 서도호의 작품을 고찰하였다. 두 번째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지표적 신체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부재하는 대상을 지시하는 오브제를 지표적 표현양상으로 분석하였다. 세 번째로는 언어를 매개로 전개된 브루스 나우만의 비논리적 언어이미지와 온 카와라의 논리적인 언어기록을 상징적 표현양상으로 연구하였다. 즉, 도상, 지표, 상징이라는 기호학적 관점을 적용하여 선행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간 실존의 표현성을 고찰하였으며 이를 통해 현대 미술에서 실존성이 다양한 매체와 표현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연구자 작품 연구 및 해석에서는 선행 작품 연구와 동일한 삼범주를 토대로 실존의 표현 양상을 고찰하였다. 먼저 실존의 도상적 표현양상으로는 작품 〈personal color zero〉와 출생 시리즈에서 드러나는 신체 이미지를 도상기호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지표적 표현양상으로는 퍼포먼스와 아카이브 작업에서 나타나는 신체의 흔적과 부재로 제시되는 빈자리를 지표기호로 해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상징적 표현양상은 신체를 대체하는 관념의 실재화가 드러나는 작품 〈문자화된 몸〉과 〈생각 3kg〉 등을 상징기호로 고찰하였다.
결론적으로 퍼스의 삼범주를 적용해 연구자의 작품을 해석했을 때, 작품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간 실존의 표상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또한 작품을 시각기호로 치환해 비가시적인 의미작용을 고찰하는 기호적 관점은 다의적인 현대 미술에 나타나는 실존성이 작품과 수용자 사이에서 의미화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를 통해 복합적인 매체로 구성되어 관람자와 유의미한 의미화의 과정을 만들어내기 어려울 수 있는 연구자 작품의 난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즉, 다양한 장르가 혼용된 작품의 범주화를 시도함으로써 작품에 다각적으로 내포된 실존적 성격이 일련의 체계를 갖고 있으며 근거 있는 인간 실존의 양태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있어서 퍼스의 기호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간의 실존성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장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