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여성작가 허련순은 중국어 창작을 하는 조선족 작가들과 다르게 직접 조선어를 사용하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 문단에서 인지도가 높은 조선족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허련순은 자신의 오랜 한국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이주한 조선족 사회의 현실과 그들의 정체성 문제에 주목하였다. 특히 한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그들의 자아 인식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천착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주변인으로서 살아가는 조선족 여성의 정체성 문제를 창작의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본 논문은 허련순의 성장과정과 자아인식이 이와 같은 작가의 창작 특징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작가의 시기별 자아정체성의 변화와 문학 창작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작가의 대표작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 『뻐꾸기는 울어도』, 『바람꽃』, 『중국색시』에 드러난 서사적 특징과 인물 형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허련순의 작품은 조선족 여성의 젠더 경험과 자아정체성의 복잡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허련순의 작품에서 조선족 여성의 주변화된 젠더 서사는 항상 조선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 문제와 교차되어 등장한다. 가부장적 가정 환경 속에서 아버지 권위에 대한 반감과 동시에 부성애의 결핍감은, 허련순의 성장과정에서 자아 형성에 핵심적 동인으로 작용하였고, 가부장제에 대한 반감은 조선족 사회에 여성의 성적 역할과 정체성 문제로 확장되어 조선족이라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와 결합하여 복잡하고 민감한 자아정체성의 문제로 재인식 되었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급격한 중국 사회의 구조 변화와 한국과의 교류 과정 속에서, 허련순은 다양한 인식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허련순은 자신의 민족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의 필요성을 느끼고 한국 사회에서 공부와 연구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조선족 이주민의 생활상, 특히 조선족 여성의 현실은 작가의 자아인식에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생계를 도모하기 위해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결혼이라는 경로를 모색하는 많은 조선족 여성과 조선족 가족 해체를 목격하면서, 조선족 여성들을 향한 한국의 타자화된 시선 뿐 아니라 조선족 여성의 한국 경험을 통한 자아인식의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이러한 인식의 경험은 허련순이 한국과 중국에 조선족 여성의 위치에 대한 탐색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허련순의 조선족 이중적 정체성은 시기별로 따져볼 수 있다. 한국과 교류하기 전에 조선족이 한국에 대한 단일한 동경이었던 이 시기 허련순의 창작은 조선족의 고단한 삶과 '코리안 드림'에 대한 추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국과 교류하기 후에는 다양한 문제로 인해 조선족은 완전히 한국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게 되었고, 한국에 대한 정체성은 단일한 추구에서 모순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중국에 대한 정체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 시기에 허련순의 작품은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본 논문은 허련순의 창작을 작가 자신의 성장 서사로 파악하고자 한다. 첫째, 유년기의 경험이 허련순의 창작에 여성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기를 부여준다. 둘째, 한국에서의 생활경험으로 허련순은 조선족의 민족 정체성 문제에 대해 깊이 탐구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되었으며, 허련순은 성별과 민족의 상처를 중심으로 여성의 자기의식의 발전과 민족 정체성의 변화를 작품의 맥락으로 삼고, 이에 따라 허련순의 창작은 자아인식과 성장서사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2장에서는 작가가 유년기에 경험했던 조선족 사회와 중장년기에 경험했던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내용을 토대로 작가의 자아인식이 어떻게 형성, 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의 자아인식과 창작과의 관련성을 고찰하고, 작가의 자아인식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탐색한다.
3장에서는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와 『뻐꾸기는 울어도』에 대한 독해를 통해 중국 내 조선족 여성들이 유년기에 겪었던 심리적 상처와 성장의 딜레마 내용을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소설 속 캐릭터의 특징과 서사 전개, 조선족 여성들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 사회적 상처에 대한 내용을 고찰하고, 이러한 경험이 이들의 여성인식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다.
4장에서는 『바람꽃』과 『중국색시』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 여성들의 서사를 통해 이들이 왜 이중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지를 탐색한다. 여기에서는 전통적 가부장제의 영향 아래서 성장한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직면하는 어려움과 압박, 그리고 생존과 존엄을 위해 투쟁하는 고난의 과정을 성장과정으로 고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