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關係)와 이로 인해 만들어진 흔적(痕迹)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한 연구자의 작품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자의 작품은 인간은 사회 안에서 관계를 맺어가며 성장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전개되며, 나무와 숲의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되었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와 사물 사이의 경계 허물기는 본 연구자와 자연 대상이 융합되는 과정이며, 이는 곧 인간과 나무를 동일시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인간과 나무를 동일시 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사유의 배경은, 장자의 변(變)과 화(化)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장자의 변(變)은 외부 사태들로 인한 수동적 변화를 의미하지만, 변하지 않는 불변(不變)의 태도를 강조한다. 그리고 화(化)는, 수동적 수용을 넘어 능동적 참여와 적극적인 생산을 의미한다. 그래서 장자에서는 내적 불변을 통해 오히려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하고, 결국 능동적 변화인 화(化)가 가능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장자에서 이러한 화(化)가 사용된 대표적인 복합어로는 물화(物化)가 있다. 물화(物化)는 사물의 질적 변화를 뜻하며, 물화의 경지에 이르면 주체와 객체 사이의 차별의식이 사라지고 만물이 하나로 같아지게 된다. 이렇게 만물제동(萬物齊同)을 통해, 장자에서는 만물은 구별이 없고, 서로 통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물화(物化)를 통한 창작자와 대상 사물의 합일을 거쳐, 이를 동일시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가로 팔대산인(八大山人)을 예로 들 수 있다. 팔대산인은 명말청초의 유민화가로, 연꽃이나 새 등과 같은 자연물을 통해 청에 대한 저항의식과 유민정신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연구자의 작품 주제인 인간관계가 어떻게 나무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관계로 인한 변(變)이라는 수동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다른 종의 사물인 나무로 화(化) 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인 연구자가 나무로 동일시 될 수 있었다. 이는 만물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 사고인 물화(物化)로 이어진다.
이러한 물화(物化)는 동양화에서 그려지는 대상을 통해 작가의 뜻과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미의식의 핵심이 되어, 외형을 그려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객체와 동일시되는 것을 통해 주체의 뜻과 감정의 사의적 표현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연구자는 주제 의식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인간관계가 갖는 특징인 필연성과 우연성을 나타낼 수 있는 물성이 활용을 시도하였다. 본 연구는 장자의 철학을 통해,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는 비교적 추상적인 작품 주제를 나무와 숲의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주제 의식을 더욱 명확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조형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