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의 줄리 초상화에 대한 연구이다. 줄리 초상화는 모리조가 딸 줄리 마네(Julie Manet, 1878~1966)를 16년 동안 기록한 작품으로, 1878년부터 1895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줄리 초상화는 어머니의 모성을 보여주는 모리조의 대표적인 작업이다. 본 논문은 딸 줄리와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줄리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줄리의 관심사와 행동 그리고 부르주아 생활상에 주목하고자 했다.
모리조는 여성 화가로서 부르주아 여성의 일상을 주로 다루었는데, 그중에서도 줄리의 초상화는 약 125~150점을 차지한다. 줄리는 모리조의 인생과 예술 세계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고, 모리조 예술에 대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모리조는 남성 화가 중심의 미술사에서 모성을 기반으로 딸의 초상화를 남겼다. 모리조는 딸 줄리의 성장과 발달을 기록했고, 점차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줄리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모리조의 양식적 특징은 색채와 붓질로 구분된다. 모리조는 하얀색을 사용하여 빛을 표현하였고, 이러한 감성적인 빛 표현은 줄리 초상화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모리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색채와 우아함은 18세기 로코코 작품을 연상시킨다. 모리조는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의 영향을 받았고, 부셰의 목가적인 모티프와 색채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1890년경의 모리조 작품은 더 선명한 색조로 변화했다.
모리조는 1880년대 초반의 줄리 초상화에서 스케치풍의 거칠고 빠른 붓질과 밑칠하지 않은 캔버스(unprimed canvas)를 사용하여 미완성의 인상을 만들었다. 모리조는 스케치풍의 붓질과 밑칠하지 않은 캔버스, 은은한 하얀색을 통해 의도적으로 작품을 미완성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어린 줄리의 초상화에서 보이던 빠르고 거친 붓질은 188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부드러워졌다. 줄리가 성장하면서 줄리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이 점차 변화함을 확인할 수 있다.
줄리 초상화의 배경은 줄리의 성장 과정에 따라 변화했다. 모리조는 어린 줄리 초상화의 배경을 자연으로 설정하였다. 당시 계몽주의 아동관은 모리조에게 영향을 미쳤고, 초상화 속 줄리는 자연적인 것들과 관계를 맺었다. 줄리 초상화는 6살 이전까지 부지발의 정원을 배경으로 하며, 6~12살에는 불로뉴 숲을 배경으로 한다. 12살 이후의 줄리 초상화는 주로 응접실을 배경으로 하며, 부르주아 여성으로서의 교육과 생활상이 나타난다. 모리조는 여성 화가였기 때문에 가정 내의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점에서 남성 화가와의 차별성을 지닌다. 모리조는 줄리 초상화에서 응접실, 발코니, 창문 등 가정 내의 공간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모리조는 이러한 문턱(threshold) 공간의 구성과 주제적 가능성을 탐구했다. 모리조는 문턱 공간에 서 있는 딸의 초상화를 통해 모성애적 기록뿐 아니라 화가로서 모리조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었다.
모리조는 줄리 초상화를 통해 헌신적인 어머니이자 전문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줄리 초상화는 19세기 후반 부르주아 소녀의 성장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줄리 초상화는 남성 화가 중심의 미술사에서 모성을 기반으로 한 딸의 초상화라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