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휴묘(韓休墓)는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장안구(長安區)에서 발굴된 당대(唐代)의 고분이다. 고분의 길이는 총 41.4m로 사파묘도(斜坡墓道), 용도(甬道), 천장(天障), 벽감(壁龕), 묘실(墓室) 등으로 구성되었다. 고분은 발굴 당시 도굴된 상태였지만 용도와 묘실의 벽화는 상당 부분 남아 있어 중국 고분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휴묘가 축조된 당대의 장안(長安)은 정치와 문화적 중심지로 부상하여 여러 나라의 문화가 유입되는 지역이었다. 이 시기 고분 벽화는 황실과 귀족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황제릉과 배장묘(陪葬墓)가 축조되면서 장안은 당대 벽화묘 조성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초당 시기까지의 벽화에서는 주로 묘주의 생활 장면이나 궁정의 생활이 담긴 장면들을 그렸다. 이와 달리 한휴묘의 묘실 벽화는 천상과 현실, 세속과 이상적인 주제가 조화롭게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묘주를 비호하는 주작(朱雀)과 현무(玄武), 이국(異國)의 문화와 한족(漢族)의 문화가 융합된 무악도(舞樂圖), 고아한 수하인물도(樹下人物圖)와 은일의 세계를 상징하는 산수도(山水圖)가 조화를 이룬다. 이는 당대에 풍성해진 사회, 문화, 종교 관념의 반영이자 확장된 대외교류에 따른 문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수하인물도는 남조의 죽림칠현 도상에서 유래하였으며, 감계적인 내용이나 유교적인 윤리를 담은 내용이 담기게 되면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휴묘가 위치한 섬서성 서안 지역의 수하인물도에는 수하사녀(樹下士女)와 수하고사(樹下故事)가 주로 그려졌는데, 한휴묘에는 고사가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당대 도교 숭배에 따른 묘주의 종교적 선호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도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사신도가 묘실에 함께 배치되므로, 벽화 주제의 조화를 고려하여 고사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 사녀도보다 자연스러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당대는 호악(胡樂)과 호무(胡舞)가 도입되어 음악과 무용의 종류가 더욱 풍부해지는 시기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호등무(胡騰舞), 호선무(胡旋舞), 구자악(龜茲樂), 서량악(西涼樂) 등이 유입되면서 문화적인 융합을 통해 당대 예술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와 같은 음악과 무용의 성행은 고분 벽화에도 반영된다. 무악도는 당대 황실 및 고위 관리의 고분에서 주로 발견되었으며, 당대 생활상을 비롯하여 문화와 예술의 발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한휴묘 벽화 속 악단은 소규모 인원이 앉아서 연주하는 좌부기(坐部伎)에 해당한다. 중앙의 무용수가 추고 있는 춤은 일반적으로 호선무(胡旋舞)로 추정되어 왔다. 여러 무용이 유입되던 7-8세기의 중국에서 호선무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다수 발견됨에 따른 결과이다. 하지만 빠르게 도는 춤사위로 기록된 것에 비해 한휴묘에는 무용수가 비교적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소극적인 춤사위를 구사하고 있어 호선무로 단언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고위 계층의 연회에 등장한 무용의 종류가 호선무 이외에도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호선무의 과감한 동작이 점차 우아한 춤사위로 변화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대의 산수도는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 , 『당조명화록(唐朝名畫錄)』 등의 문헌이나 후대의 모사본 이외에 현전하는 회화 작품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당대 고분 벽화 중 의덕태자묘(懿德太子墓, 706), 장회태자묘(章懷太子墓, 706-711), 절민태자묘(節愍太子墓, 710) 등에서 산수의 표현을 엿볼 수 있으나, 인물 주위의 배경으로만 묘사되었다. 따라서 당대 산수도의 진작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던 상황에서 한휴묘 단독 병풍식 산수도의 발견은 회화사적인 의의가 크다.
당대 산수화에 사용된 일수양안(一水兩岸)의 구도는 한휴묘와 비슷한 시기 축조된 무혜비묘(武恵妃墓, 737)와 주가도촌(朱家道村) 당묘(唐墓)의 병풍식 산수도에도 사용되어 당대 회화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한휴묘 산수 벽화에는 초정(草亭)과 대나무 숲이라는 정원(庭園)의 소재를 추가하여 자연을 즐기고자 하는 당대인의 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또한, 한휴묘 산수도는 해 질 녘의 풍경을 황색의 색채를 통해 묘사하였다. 금니(金泥) 대신 황색을 이용한 금벽산수(金碧山水)의 초기 형태로도 볼 수 있으며, 지는 태양은 서쪽 세계를 관상(觀想)하는 불교적인 의미로도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도교의 궐형(闕型) 구도, 초정과 자연에 담긴 은일 사상, 불교의 관상적인 측면이 고르게 반영된 것으로 새로운 산수 벽화의 유형을 제시하였다.
한편 당대의 사신도는 북조와 수대의 양식을 수용하여 발전하였으나 8세기 중반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한휴묘가 축조된 8세기 중반의 고분 벽화는 의장행렬도, 수렵도 등이 사라지고, 묘실에는 주작과 현무가 배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초당 시기 승선(升仙)을 의미하는 청룡과 백호의 역할과 구분되고, 호위의 기능을 담당할 만한 도상으로 주작과 현무를 배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휴묘의 주작도와 현무도는 묘실 서벽의 병풍식 수하인물도와 접하여 관상 주변을 둘러싼 형태이다. 병풍식 벽화는 현실에서처럼 묘주의 지위를 강조하고, 관상을 호위하듯 단독상으로 배치된 사신은 수호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이처럼 한휴묘는 당대 인물화와 산수화의 발전을 파악할 수 있는 고분이며, 초당과는 구별되는 주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북조와 수대를 거쳐 초당 시기의 영향을 반영한 고분의 구조와 벽화의 배치가 나타나는 동시에, 이전 시기와 구분되는 산수도, 사신도 등이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성당 시기 고분 벽화의 발전 상황과 변화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크다.
한휴묘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산수도, 무악도를 중심으로 하는 주제별 논의만 이루어져 왔다. 본 논문에서는 한휴묘 벽화의 전체적인 특징과 의의를 파악하고 동시대 고분 벽화와의 비교 연구를 진행하였다. 벽화의 주제별 배치와 도상의 분석을 진행함으로써 장의 미술을 넘어 당대 회화사에서 차지하는 벽화의 회화사적인 가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