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은 전통적인 민중운동의 사유체계로부터 배태된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와는 반대로 외부로부터, 서양 근대세계로부터 유입되었다.대한제국 멸망 전후 국내에서 비밀리에 결성된 신민회, 배달모듬 등과 같은 혁명적 민족주의 단체들이 초창기 사회주의자들의 모체 역할을 했다. 모체단체의 구성원들은 1910년대에 점차 좌우 양 진영으로 분화되었다. 그 분화는 연해주와 북간도의 망명지에서도 일어났고, 재일본 유학생 사회에서도 진행되었다. 민족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내면 세계가 사회주의로 기울게 된 심리적 계기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 일본 메이지 사회주의자들이 보여준 국제주의적 면모는 한국인 민족주의자들의 내면 의식에 일본 혁명과의 연대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한국 독립의 전망을 일본 혁명과의 연대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자각이야말로 한국 민족주의자들의 마음 속에 사회주의로의 경사를 초래한 내적 근거가 되었다. 그 자각을 갖게 된 사람들이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망명한 전투적 민족주의자들과 일본에 유학한 신지식층이 사회주의자를 배출하는 풍부한 원천이 되었다.주제어신지식층, 사회주의, 신민회, 배달모듬, 민족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