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는 우리 역사상 최대의 격변기였다. 이 시기에는 우리의 전통 법제도 스스로에 의하여 또는 외부의 강요로 급격한 변혁을 겪게 되고, 이에 따라 法生活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많이 나타나게 된다. 이 글은 가족제도나 관혼상제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법제도에 있어서 이 시기에 나타난 변화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대응 및 적응모습을 살펴보려는 목적에서 쓰게 되었다. 제도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고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그 제도와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제도 자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의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당시의 법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생활관계법제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적응모습을 살펴보기 위하여 그들이 일상과 관련하여 남긴 솔직하고 상세한 기록인 생활일기들을 분석하였다. 史料로 쓰인 생활일기 『是言』과 『紀語』로, 구례 지역에 살던 文化柳氏家의 祖孫 류제양·형업이 각각 기록하였다.
이 일기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족공동체와 친족공동체(宗中)가 붕괴되고 전통적 孝悌 관념이 약해지며 '戶主制'로도 불리는 새로운 호적제도가 도입되는 등 가족제도에 나타난 변화라든가 寡婦再嫁의 허용과 기독교의 전파 등으로 말미암은 전통 예법의 변화, 신분제도에 나타난 변화 등을 접하는 그들의 태도에 관하여 다루고, 여성의 권리 내지 지위가 과거에 비해 다소 상승한 시기에 이와 관련된 그들의 인식이 어떠하였는지도 분석하였다.
분석의 결과 두 저자의 전반적인 인식과 대응모습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류제양은 이미 환갑이 지난 늙은 나이에 일제의 식민통치하에 들게 되어, 제사를 받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을 그냥 바라만 보면서 비난을 가하고 탄식만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손자 류형업은 젊은 나이에 자신의 가정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비난과 탄식을 해 보았지만, 이내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새로운 방법-적법이든 불법 또는 탈법이든-을 찾아내는 등 점차적으로 적응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