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 초기 임면과정에서 통치층간에 갈등을 보인 '가누(家累)'현상을 분석하고 인사에 있어서 통치층의 에토스와 정치문화의 특수성을 살펴보며, 이것이 통치층간의 권력구조를 어떤 방향으로 규정지어 가는가를 파악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조선의 정치사회가 유교 국가체제를 지향함에 따라, 통치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이념도 그 기능이 강화되어 갔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임명대상자의 도덕적 흠결 외에 '가누'가 인사에 중요하게 반영되었다. 임면때 '가누'의 반영은 조선 초기 유교정치체제의 구축과정에서 발생된 것이지만, 인재등용의 유교원리와 상이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것은 유교문명의 발생지인 중국과도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조선에 있어서 독자적인 인사정책의 준거틀의 하나로 작용하였다.
인사에서 '가누'의 적응여부에 관한 논란은 주로 대간들이 수표형식을 통하여 관리의 자격을 검증할 때 통치층간에 갈등으로 나타나는데, 임명권자인 군주는 대체로 유교원리의 현재론(賢才論). 군은(君恩)·군효(君孝)· 군명(君命) 등을 내세워 임명권에 대한 제한을 견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누'의 적용은 조선의 유교국가체제로의 진행과 맞물려 하나의 정치문화의 형태로 그 정당성을 구축해 가고 있었다.
경국대전의 구축기인 성종대에 이르면, 군주의 임명권 강화의 명분이 되었던 제반요인(군은·군효·군명)도 도리의 차원에서 재해석됨으로서, 임명권의 제약을 받게 된다. 이는 유교국가체제로 진행됨에 따라 군주의행위도 유교이념에 견제를 받게 되며. 권력구조의 측면에서도 군신의합'에 근거하여 전제통치로 가기 힘든 정치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군주의 고유한 권한으로서의 인사권의 성격은 점차 약해지고, 성종대에 이르면 통치층이 함께 공유하는 공기(公器)로 규정되는 등 그 의미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인사에 있어서 '가누'의 적용은 통치층의 사풍(士風)이나 윤리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통치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오히려 유교원리의 현재론과 배치되어 조선사회의 편협적인 임명구조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인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초래되어, 최고통치자의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하였으며 동시에 신분유동성의 고착화를 가져와 조선사회를 경직시키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를 위하여 그 연구대상을 조선건국부터 성종대까지로 하였으며, 『조선왕조실록』을 통한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