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에서 이루어져온 미디어 융합에 따른 방송과 통신 정책기구 개편 논의를 평가해 보는데 목적이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최근 이 오랜 논쟁을 끝내고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별도로 담당하고 있는 방송 및 통신 정책을 통합적으로 관장하는 권한을 지닐 하나의 통합적 정부기구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인수위의 결정이 과도하게 성급하고 폐쇄적이며 비민주적 절차로 인해 정치적 반격의 소지를 남기고 있지만 기본적인 방향차원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절차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수위의 결정이 타당한 이유는 종래 방송통신 정책기구 개편 연구들의 미시적 행정 공학적 접근방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래의 논의들은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시각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이론의 결여 같은 문제로 인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정책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방송통신 규제기능의 리엔지니어링에 초점을 두어왔다.
필자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정책기구의 위상, 역할, 기능은 보다 거시적이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조망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부터 새로 추가된 부분) 첫째, 방송통신 정책기구 개편을 통해 등장하게 될 새로운 기구의 위상은 중장기적으로 한국사회가 나아가는 질적 사회발전의 총체적 전망 속에서 모든 층위의 미디어/언론/커뮤니케이션 정책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미디어정책기구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 정책기구로 조망되어야 한다. 지원/진흥 정책중심의 행정부처와 규제정책중심의 위원회 기구를 구분하는 방안으로는 이러한 통합적 미디어/언론/커뮤니케이션 정책기능을 담당할 정책기구라는 거시적 비전을 담아내기 어렵다. 인수위가 제안한 통합적 방송통신위원회 안은 향후 행정부와 독립된 영역에서 언론과 커뮤니케이션의 정책을 종합적으로 아우를 미래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정책 기구 성격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 있다고 할 것이다.
둘째, 방송통신 정책 기구의 핵심 역할은 미디어의 공공적 목표와 시장의 효율성 간의 균형과 조화를 달성하는데 있다. 따라서 지원/진흥 정책과 규제정책을 구별하여 이들 별개의 기구로 설치하는 방안은 미디어 정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흐리게 할 뿐 아니라, 이 양자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정책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오히려 종래와 마찬가지로 사회문화적 정책과 산업정책을 별개의 기관으로 이원화 시키고자 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드러낸다.
셋째,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따른 정책의 변화방향은 새로운 미디어, 그리고 이에 대한 새로운 정책 기능이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에 대한 기본적 정책능력의 강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능력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사회문화적 가치와 산업적 가치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최적점을 찾아내는 정책능력을 의미한다. 공공적 가치와 시장의 효율성 제고라는 정책목표를 한 기구 내에서 아우르며 합의제 방식으로 정책판단을 수행할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러한 실질적 정책변화방향에 보다 잘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인수위가 방송통신 정책기구 개편 문제를 처리한 방식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절차적 합리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새롭게 대두하는 권력이 정권 인수 작업의 일환으로 미디어, 언론, 커뮤니케이션 정책 영역을 주무르는 양상처럼 진행되었다. 방송통신 정책기구 개편 문제를 포함한 각종 미디어 정책을 둘러싼 인수위의 거침없는 언행은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눈에조차 과도함을 넘어 민주시민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태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절차상의 문제는 새로운 정부가 내놓은 미디어 정책내용 자체에 대한 의혹 내지 신뢰 상실과 시비로 이어져 제대로 된 정책방안이 표류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새 정부는 향후 미디어 정책 문제를 다루어 감에 있어서 절차적 합리성을 존중하는 보다 신중한 접근방법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