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명은 아나키즘을 통해 자신의 항일진로와 근대민족운동 방향을 찾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민족중심의 배타적인 세계관을 극복하고, 아나키즘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염원하였다. 그러면서도 항일민족운동을 아나키즘에 우선하는 가치로 받아들였다.
독립운동세력의 단결과 한·중 양 민족의 연대를 주장한 그의 사상적 기반은 아나키즘의 상호부조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관내지역을 무대로, 중국인들과의 연대와 협조가 없이는 독자적인 활동이 용이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나키즘에 호의적이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중국인 지인들은 소중한 연대대상이자 지원자였다. 중국인 지인들과의 동지적 관계는 그 나름대로 상호부조 논리를 구현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는 국가의 존재를 일부 인정하였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총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자신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기도 하였으나, 임정 활동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각 당파를 포괄하는 하나의 통일된 '민족당'을 만들고, 이 '당'에 항일독립운동의 지휘권를 맡기자고 제안하였다. 그가 통일전선의 형태로 '민족당'을 상정한 데에는, 아나키스트로서 '정부' 형태에 대한 거부감도 반영된 것으로 유추된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아나키즘 가치에서 찾고 싶어 하였던 그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