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WTO 출범 후 다자주의적 자유화를 지지하며 FTA 등 지역무역협정의 체결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WTO 차원의 다자간 협상에 대한 실망과 아시아지역의 외환위기, 그리고 중국의 WTO 가입에 따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지역무역협정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의 지역무역협정은 대부분 경제동반자협정(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EPA)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본질은 FTA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이 최초로 체결한 지역무역협정은 2002년 말에 싱가포르와 체결한 일-싱가포르 EPA였다. 이후 일본은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주로 ASEAN 회원국들과 개별적인 EPA를 체결하였다. 동시에 멕시코, 칠레 등의 국가와도 지역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현재는 호주, 스위스, 인도 등과 지역무역협정을 검토하거나 진행 중에 있다. 또한 이웃인 중국과 한국과의 FTA 또는 한중일 FTA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이에 관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일본의 EPA에서 무역구제제도는 상품무역에 관한 규정들 중에서 예외적인 사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대부분의 EPA에서는 무역구제제도 중에서 양자간 긴급수입제한조치에 관한 규정만을 특별하게 마련하고 있으며, 그밖에 다자간 긴급수입제한조치, 반덤핑이나 보조금에 대한 상계관세조치 등은 특별한 규정없이 WTO 규범에 따르는 것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이 ASEAN 소속 국가들과 개별적으로 체결한 EPA 규정들을 분석하면, 한국과 중국이 ASEAN 전체와 체결한 FTA와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역구제제도와 관련된 내용 중에서 가장 특이할만한 부분은, 일본의 EPA에는 조치를 취하는 국가의 해당 품목 수입에 일정비율 이하의 수출국을 무역구제조치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특별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발도상국인 ASEAN 상대국에 대한 특별한 혜택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본의 EPA에서, 양자간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국가기관에 의한 사전조사와 사전협의가 필요하다. 사전조사는 대부분 1년 이내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또한 보상협의가 일정한 기간 이내에 합의되지 못하면, 조치를 받는 상대국은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EPA에 나타난 양자간 긴급수입제한조치는, 한 품목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3년 내지 4년 정도의 기간 동안만 적용될 수 있다. 이밖에 특별한 상황에서는 200일 이내의 기간동안 잠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일본의 EPA에 나타난 이와 같은 특성은 다른 국가들의 FTA와 비교하면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웃인 한국과 중국이 체결한 FTA의 관련 규정들을 서로 비교하는 과정에서, 한중일 3국간의 정책적 차이점과 공통점을 도출할 수도 있다. 보다 구체적인 비교를 통해서, 현재 논의중인 한중일 FTA의 무역구제 관련 사항에 관한 각국의 대략적인 입장을 정리하는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