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정치체제는 오랫동안 군주 1인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는 전제정(tyranny)으로 알려져 왔다. 전제정하의 인간은 말과 행위의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전제정은 1인의 자유인과 만인의 노예로 이루어진 체제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전통 정치체제는 대체로 협의적인 군신공치제를 유지해왔다. 중국에서 법가와 묵가의 정치론은‘共治’(governance)나‘협의’(deliberation)의 원리를 부정했다. 법가는 비인격적인 강제적 규칙으로서의 법과 군주의 절대권만이 공공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했다.
묵가는 천자의 의사에 전적으로 복종함으로써만 정치적 질서가 확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가는 왕이 현자를 스승으로 섬기고, 그를 신하로 삼아 그의 의사를 따를 때만 이상적인 정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전통 정치체제는 대체로 유가의 전통을 지켰다. 한국에서 조선은 군신공치제의 이론과 전통을 확립했다. 조선의 건국자 정도전은『조선경국전』에서 왕권(정통성)-재상권(집행권)-대간권(언론권)을 분립하여 균형을 이루는 군신공치제를 조선의 정부형태로 제시했다.
시대 상황이나 왕의 개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정도전의 체제구상은 커다란 의미에서 500년간 조선의 정치적 틀로 수용되었다. 조선 초기의 군신공치제는 태조대에 모범적으로 운용되었지만, 태종대에는 상당히 위축되었다. 세종대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어, 조선적 정치운영체제의 이상적인 전범을 확립했다. 그러한 성공은 정도전의 훌륭한 체제구상과 세종의 뛰어난 정치적 자질에 의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