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정 변계량(春亭 卞季良)은 초선 초기의 대표적인 학자관료이다. 그는 여말선초의 소용돌이 정국에서 당시대의 일반인이 경험할 수 없었던 정치사회적 사건들을 경험했다. 당시의 주류학문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조선의 정치와 행정을 방향 잡던 최고위급 인물들과 교유하면서 생각을 교환했다. 그의 정치에 관한 생각은 조선 초기 최고 정치가와 지식인들의 정치에 관한 사유방식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불교와 도교에 관한 포용적 사고와 유교적 문치(文治)를 위한 제도적 정비, 그리고 정도전(鄭道傳)과 달리 왕권강화를 통한 정치적 안정을 기하고자 하는 그의 생각은 태종시대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 훌륭한 창의 역할을 한다. 그는 유교적 이상과 조선의 현실을 조화시키고자 했을 뿐 아니라, 유학은 물론 불교, 도교와 기타 일상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에 열려 있었다. 그의 독서범위는 당대 최고수준 이었고 이것은 조선 초기의 지식인들이 어떤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성숙시켜나갔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를 통하여 우리는 조선 후기 주자학 중심의 정치사상과 구별되는 조선 초기 정치사상의 독특한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그의 정치사상은 조선조 유교정치가 어떤 경로를 거쳐 극단적으로 주자학화 된 정치적 사유로 귀결되어 갔는지를 살펴보는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