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문학에서 제시된 공포의 의미를 분석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상에게 공포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의 깊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앓은 결핵은 훼손의 시간이 운명적임을 단언하게 했으며 그로 하여금 자신이 시간의 형해(形骸)임을 선언하게 했다. 그러나 이상의 공포를 단지 신상의 문제와 관련시키는 것은 이 글의 의도가 아니다. 공포로 가득 찬 내면 또한 시대의 초상(肖像)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적 입장이다. 훼손의 시간은 식민자본주의와 모더니티가 관철된 시간이었고 따라서 공포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상의 '처녀작'「12월 12일」을 그에게 공포가 어떻게 새겨졌는가를 보여주는 '문학적 원점'으로 재독했다. 이상이 백부의 양자로 갔던 사실을 바탕으로 씌었다고 보이는 이 소설은 이적(移籍)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것으로, '불행한 운명'의 양상을 보여준다. 「12월 12일」에서 공포의 대상은 연기(緣起)의 고리를 타고 닥치는 불행한 운명이며 그것을 피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시간 속에 갇힌 가운데 예견되는 자신의 부재였다.
불행한 운명에 갇힌 훼손의 시간은 식민지에서 모더니티가 작동한 시간이기도 했다. 모더니티의 작동이 어떤 복원이나 지향도 불가능하게 하는 교란을 진행시켰다는 점에서였다. 그의 공포는 이적을 강요한 모더니티가 초래한 식민지의 불균등성이라는 조건을 통해 다시 읽혀져야 할 것이었다.
그는 '초근목피도 없는 콩크리-트 전원'(경성)을 떠나 모더니티의 중심이라고 여긴 동경으로 향하였으나 기대와는 달리 동경에서도 20세기라는 시간의 질주를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깊이 느낀다. 모더니티에서 사표(師表)를 찾는 일은 불가능했다.
공포의 증인이 되는 것은 이상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지였다. 공포의 증인이 되는 방법은 예고된 파국을 선취하는 것이었다. 파국을 선취한 시간의 형해, '박제가 된 천재'는 공포를 증언하는 증인의 존재형식이었던 것이다. 그가 전하는 공포는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공포는 초극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그것의 출처인 역사의 구체적인 맥락으로 되돌아갈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공포가 '이상 문학의 총체성'이 되는 소이는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