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망국으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살았던 좌파 지식인들은 해방의 방략으로 무엇을 고민했고, 미래에 건설될 조국의 모습을 어떻게 구상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쓰여진 글이다.
해방정국의 좌파들이 모두 한국의 역사에 깊은 조예를 가진 역사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은 역사에 민족의 진로에 대한 답안이 있다고 생각했고, 역사를 통하여 미래 조국의 건설을 설계했으며, 그래서 그들은 더 고뇌에 찬 삶을 살았다.
해방 정국에서의 좌익 사사의 핵심은 민중주의(populism)였다. 그들은 멀리는 동학농민혁명에서, 그리고 일제 치하에서의 3·1운동에서 보여준 민중적 역량의 가능성과 좌절·회한, 그리고 해방 정국에서 대구(大邱)사건과 제주 4·3사건을 통해서 감지한 민중적 저력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국에서의 민중 혁명의 가능성을 감지했거나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엄혹한 미군정 통치 아래에서 성숙되지 않은 민중 의식은 그들의 꿈을 이뤄주기에는 미흡했다.
식민지 치하에서의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와 밀접한 친화력을 갖는데 그 연결 고리가 독립·해방이라는 상징적 용어였다. 교조적 맑스주의에 따르면 사회주의자들에게 민족은 중요 가치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교시는 그들에게 심리적 갈등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국가에서는 민족 투쟁이 계급투쟁에 우선한다.'는 코민테른의 교시와 모택동의 국공합작은 한국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과 계급의 갈등에서 민족의 편에 서도록 이론적으로 정리해주었다.
식민지 시대와 해방 정국에서의 한국 좌파들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도는 그리 정교하지도 않았고, 그 필요도(必要度)도 그리 절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회주의에 경도하게 된 이유는 민족 해방과 국가 건설에 대한 대안의 부재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에서의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는 그 자체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가치가 아니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식민지 지배 체제 아래서 하나의 대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