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주도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임금을 공자같은 성인을 만들어 왕도정치를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시행된 것이 경연이었다. 이러한 경연을 담당하는 경연관은 시기에 따라 변하였다.
조선전기에는 태조대 당상관 중심으로 하던 경연을 하였다. 세종대에 집현전을 설치하면서 경연을 전담하게 되었다. 이는 세조대에 집현전이 혁파되면서 폐지되었다가 성종대에 홍문관으로 부활하게 되고 홍문관은 삼사의 하나인 언관으로 발달하게 된다.
성종 후반에 특진관 제도가 도입되면서 중종대에는 경연관의 자격문제와 더불어 특진관의 자격문제가 거론된다. 그러면서 당상관들이 담당하던 특진관을 재야의 덕망있는 선비를 특진관으로 초빙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렇게 경연관에 재야 선비를 초빙하는 문제는 조선후기가 되면서 산림을 초빙하는 문제로 발전하여 정치의 가장 주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찬선 진선 자의 등의 관직을 설치하여 세자를 가르치는 스승으로 초빙하여 임금의 경연에 참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효종 현종대에는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이 산림경연관으로 활동하게 된다. 숙종대에 가면 환국이 일어나면서 환국을 주도하는 산림 경연관이 등장하게 된다.
영조대 탕평책이 행해지면서 유척기 송명흠 김원행 등 노론 산림들이 교대로 산림 경연관으로 초빙되면서 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정조대에는 산림 경연관은 명목이고 실제로 세자 서연관으로의 지위 정도를 유지하게 된다. 오히려 경연은 규장각 관원들이 주도하게 된다. 순조대 이후에는 세도정치가 행해지면서 산림 경연관은 명목에 불과하게 된다.
이처럼 조선전기 주자성리학 조선후기 조선성리학으로 변하면서 경연관 제도도 변화하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