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메이지 시대 일본 지식인들의 동향에 주목하면서 일본의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서의 민족주의 확립 과정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겔너나 앤더슨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민족주의를 근대 산업사회의 산물로 규정할 수 있다면, 바로 메이지 시기야말로 일본에서의 민족주의가 확립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시기에 활약한 지식인 가운데 특히 시가 시게다카(志賀重昻)와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의 사상을 중심으로 메이지 민족주의의 논리와 특징을 분석하였다.
시가와 오카쿠라는 모두 대체로 비서구적인 근대화의 길, 환언하면 일본의 주체적인 근대화의 방향을 모색(이들이 당시의 사회 전반에 걸쳐 압도적인 서구화의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로 시종일관하였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하였다. 따라서 국수주의 혹은 국민주의적인 민족주의가 일본에서 확립되는 데 있어 이들이 차지하는 위상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탐험가 시가'와 '예술가 오가쿠라'에 공통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서구를 학습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 되어 있던 시기에 서구를 향해 서구의 언어(영어)로 일본의 전통적 미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일본의 자연적 미(풍경)를 강조한 시가와 정신세계의 미(다도)를 강조한 오카쿠라는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일본 국수주의를 대표하지만, 한편으로는 국수주의의 표출방식으로서의 서구 언어의 활용에서 보는바와 같이, 서구의 배제를 사정(射程)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개화적이다. 이들의 국수주의 사상은 서구화의 진행 속에 비로소 일본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일본사회에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국수주의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