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민법의 시대적 과제와 입법정책의 방향은 보다 쉽고 변모된 민사관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에 버금가게 앞으로 남북한의 통일에 대비한 통일 민법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통일에 대비한 민법분야에 대한 준비작업으로서는 남북한 민법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규명함과 동시에 양자의 비교를 통해서 통일 한국에서 갖추어야 할 법의 모습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결과제가 되며, 이러한 입법정책의 방향을 위해서는 남북한 민법 사이의 차이점 중 수용의 한계를 명확히 할 요소를 규명하여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경우 전형적인 사법의 영역인 민법의 각 영역마다 개인 상호간의 사생활관계를 부인하고 오로지 국가권력 주도하의 공생활관계로서 규율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북한의 민법으로 하여금 자연히 공법(公法)으로서의 성질을 띠게 하며, 이는 법 규정상 국가경제계획의 실현과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와 사적 소유의 금지라는 민법의 기본원칙(동법 제1조, 제3조, 제4조)과 민법을 위반한 공민에게 민사책임뿐만 아니라 행정적 또는 형사적 책임도 가하도록 하는 제재 규정(동법 제258조)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특히 북한 민법은 일반제도에서 법률관계의 본질과 관련하여 사회주의 건설과 계급적 성격을 역설하는 정치색을 강조하는 점, 자연인에 대하여 단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가치를 중시하여 공민으로 이해하는 점, 불법원인급여에 대하여 단순히 반환청구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고에 귀속되도록 하는 점 등에서 강한 공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물권제도에서도 소유 및 물권관계를 착취를 중심 요소로 하여 소유주체를 따라 소유형태를 다양화하는 점, 점유권을 본권으로부터 미분화하고 있는 점, 부동산무주물에 대하여 취득시효 등 개인소유권취득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점 등에서 공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 또 북한 민법은 채권제도에서 계약에서 계획적 계약을 계획에 기초하지 않은 계약에 우선시키는 점, 계획과제의 변경 또는 폐기에 따라 채권관계를 변경·소멸시키는 점, 계약책임에서는 위자료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점,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위하여서도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을 인정하는 점 등에서 강한 공법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북한 민법의 내용 중 계약총칙을 채권총칙에서 규율하는 점, 북한 민법의 법률 용어가 대체적으로 보통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은 입법적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통일 한국에 있어서 민법의 제정은 통일 헌법의 모습에 따라 법적 접근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나, 통일 민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존엄과 자유, 법인격의 평등 및 사적 자치가 핵심적인 골격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 북한의 민법이 재산관계에 대한 민사적 규제를 통하여 사회주의 경제제도의 달성을 위하여 국가경제계획실현을 위한다는 구호 아래 가장 사적인 관계로서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할 재산관계에 대하여 총칙·물권법·채권법 등의 각 영역에서 통치관계로 파악하는 공법적 성질은 남북한 민법의 본질적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임은 물론 장차 통일 민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수용의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며, 이를 위한 법제분야의 입법정책과 준비작업에서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