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동양화 영역에서 일어난 제일 큰 변화는 서구로부터의 추상적 조형기법의 도입, 즉 추상화(抽象化)라고 할 수 있다. 동양화단에서의 추상의 수용은 1950년대 초반에 이르러 김기창, 박래현을 시작으로 김영기, 이응노 등 개별적인 작가들에 의해 입체파, 미래파, 표현주의와 같은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수용과 실험의 형태로 모색되었다. 동양화단의 추상화 단계에서 두드러지는 시기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로, 일련의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추상실험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면서부터 이다.
서세옥의 주도하에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출신의 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1960년에 창립되어 1964년을 끝으로 해산한 묵림회(墨林會)는 동양화단의 수묵추상과 관련하여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묵림회 자체에 대한 다층적인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동양화단의 추상 수용의 관점에서 묵림회에 대한 문헌적?조형적 접근을 통해 묵림회의 추상실험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 또한 이것이 1950년대 동양화단에서 선행되었던 추상 실험과 변별점이 있는지,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동양화단에서의 묵림회의 역할과 한계점을 짚어보게 된다.
묵림회 결성이 당시 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동양화단에서 탄생한 신진 그룹, 그것도 대학의 동양화과 출신들로 이루어진 신진들의 단체였다는 점에 있다. 권영우, 안상철, 박노수, 서세옥과 같은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의 신진들이 이미 1950년대 중반 이후 국전에서 새로운 화풍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신동양화단의 전위부대’로 일컬어졌던 전례 등을 감안한다면, 서세옥이 주도한 동양화단 최초의 신진 그룹에 대한 기대는 필연적인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전위적 청년 작가들의 집결체’를 기치로 내세운 묵림회의 ‘전위’에 대한 의욕은 실질적인 작품의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창립전에 출품된 작품 대부분이 종래 전통적 남화북화(南畵北畵)의 화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창립 초기 1-2년간의 치열한 모색기 동안 조형적 지향점을 구체화하고 공유하기 보다는 무분별한 작가 초대로 이들이 애초에 내걸었던 현대적?전위적 이념이 점차 퇴색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서세옥의 독주 문제와 이후 운영을 둘러싼 갈등, 초기의 실험 의욕을 구체화할만한 조형의식의 부재 등으로 인해 8회의 정기전과 2회의 소품전 등 총 10회의 전시를 끝으로 묵림회는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당시 묵림회의 출품작은 전시 기사와 함께 실린 한정적인 이미지 자료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데, 흔히 묵림회의 조형적 정체성으로 후에 일컬어지는 ‘수묵추상’의 경우 창립전 때는 민경갑과 서세옥, 전영화 정도에 불과하며, 이후에도 전체 회원들에 비하면 수적으로는 소수의 회원만이 추상?반추상 작업을 전개해나가는 정도에 그쳤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했을 때 적을 때는 8명, 많을 때는 29명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산수화?인물화까지 포함하는 들쑥날쑥한 회원들의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묵림회의 조형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한 이들 몇몇 작가의 작품을 통해 묵림회 전체의 성격이나 묵림회의 조형성을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결국 묵림회는 추상적 기법은 물론 전통적 양식을 포함하는 묵림회 내에 존재했던 다양한 조형의 갈래를 포괄하는 단체로 재정의 할 필요가 있으며, 다만 묵림회의 조형성을 총괄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화단의 추상화라는 관점에 한정했을 때 ‘서세옥’, ‘민경갑’, ‘안동숙’, ‘전영화’ 등의 작가에 대한 접근이 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들 일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묵림회의 ‘전위’는 세계미술의 첨단의 상징이자, 1960년대 전후 한국 화단의 시대적 조형 정신이었던 앵포르멜(비정형미술)의 수용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묵림회 내에서 시도된 추상의 양상 또한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도출되기는 어렵다. 다만 60년도를 전후한 ‘앵포르멜’ 양식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서, 앵포르멜의 조형적 기법을 모두 동일하게 따르기 보다는, ‘비정형’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각기 작가들의 관점과 취향대로 개별적으로 실험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묵림회가 창립에서부터 이념적 통일을 보여준 그룹이기보다는 다소 막연한 ‘구각의 탈피’와 ‘신동양화의 개척’이란 관념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여겨지며, 이는 묵림회 내의 추상 계열의 작가들뿐 아니라 묵림회 전체의 조형적 지형도에서 보이는 ‘통일된 맥락의 결여’를 설명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애초에 막연한 ‘새로운 동양화의 개척’이라는 관념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묵림회의 활동은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인 흐름 안에서 다만 ‘시도’였던 실험들이며, 결성을 주도했던 서세옥, 민경갑 등의 작품을 통해 그 조형적 지향성을 읽어낼 수 있다. 일련의 실험 이후 대부분 전통적인 동양화의 영역으로 돌아가긴 했으나, 이 시기의 추상적 실험들을 토대로 한층 더 확대된 수묵화의 한계와 영역은 특히 이들이 대학 교육기관에 자리 잡음으로써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달되었고, 1980년대 이후 조형적인 필연성을 확보하게 됨에 따라 ‘수묵추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장르가 생겨나게 된다.The most remarkable transformation in Korean ink painting tradition of twentieth century was the introduction of abstract expression from the West, the abstractionism. This abstractionism of ink painting tradition was begun with Korean artists Kim Kichang and Park Raehyun in the early 1950s, and developed in the method of experiment and adoption by Kim Youngki and Lee Ungno who introduced Western modernism including such as Cubism, Futurism and Expressionism. This transformation into abstract technique prospered from the late 1950s to early 1960s when young group of artists who studied Korean ink paintings such as Kwon Youngwoo and Ahn Sangchul progressed and found the experimental techniques of various abstractions in ink painting tradition.
‘Mukrimhoe’ which was founded in 1960 by young Korean artists graduated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under the leadership of Seo Se-ok and dissolved in 1964. Although it is frequently quoted as important concerning traditional black-and-white abstract paintings, there has no multi-dimensional studies on ‘Mukrimhoe’ so far. Therefore, from the perspective that abstract techniques were brought into Korean ink painting tradition this paper will take a closer look at Mukrimhoe's experiments with abstract forms and differences, if any, from precedent abstract trials in the 1950s through the bibliographical and figurative approaches. In addition, it will focus on analysis of differences and subsequently reflect on the role and limitations of the organization.
First of all, the initiation and organization of ‘Mukrimhoe’ is discussed and the contemporary criticism of its accomplishment and real activities in the artistic development is followed. Then it continues on the analysis of each artist's work dealing with the visual characteristics of its own. Thus, it is examined how the abstract experiments of the organization had changed and developed through the before and the after of association of ‘Mukrimhoe’ in the tradition of Korean ink painting. Finally, it will discuss the circumstances and aspects under the emerging activity of ‘Mukrimhoe’ in the context of abstractionism in Korean ink painting by understanding the limitation and challenge of its meaning of avant-garde progress in the last chap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