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갑주문화는 기본구조와 연접기법 등 제작기술의 차이에 의해 크게 3가지 기술계통으로 구별된다. 이 중 지판(地板)을 사용하여 판갑(板甲)을 제작하는 지판혁철(地板革綴) 계통을 제외하고, 소찰(小札)을 사용하여 찰갑(札甲)을 제작하는 기술은 소찰혁결(小札革結)과 소찰수결(小札垂結)의 2가지 계통이 있다.
소찰혁결 계통은 방형 계열의 상방하원형 소찰을 사용하고, 혁결법으로 신갑의 상하 방향을 연접하는 내중식(內重式)에 우협개폐(右脇開閉)가 특징이다. 지역적으로 중국 중원지역의 한족(漢族)과 관련되며 어린갑(魚鱗甲)으로 대표된다. 소찰수결 계통은 장방형 계열의 소찰을 사용하고, 수결법으로 신갑의 상하방향을 연접하는 외중식(外重式)에 전동개폐(前胴開閉)가 특징이다. 지역적으로 중국 동북지역의 비한족(非漢族) 유목 민족과 관련된다.
그러나 기존에는 지역적인 기술계통의 전통을 강조하는 연구경향으로 인해 기술 계통의 상호교류 문제를 등한시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특히 서로 다른 기술계통이 겹치는 지역에서는 기술계통이 혼합된 개체가 다수 확인된다. 즉 전국시대 후기에 연나라(燕國) 변경에서 찰갑의 두 기술계통이 혼합되기 시작하였으며 한대(漢代)에 들어와서 흉노와 선비 등 북방 유목민족과 지속적으로 교류한 결과 중원지역의 소찰혁결 계통에 소찰수결 계통이 혼합된 개체가 내몽고(內蒙古)에서 운남성(雲南省)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제작됨을 알 수 있었다.
영남지역의 4세기대 찰갑도 요찰(ㅡ자형)의 유무를 기준으로 2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기술계통과 유입경로를 검토한 결과 요찰을 가지는 유형은 3세기 무렵 중국 동북지역에서 형성된 요찰을 삼연(三燕) 내지 고구려를 통해 수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요찰을 가지지 않은 유형은 낙랑을 통해 수용된 중원지역의 소찰혁결 계통에 소찰수결 계통이 혼합된 후 영남지역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