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근대 일본에서 '제국' (帝國) 개념이 중요한 정치적 개념으로 정립되어가는 과정을 개념사적으로 접근하여 고찰한다. 제국이라는 개념은 동양적 기원도 내포하지만, 근세 말에 일본 지식인들에 의한 서양어의 번역 개념으로서 재탄생한다. '제국'이 일본의 공식 외교 용어로 처음 등장한 것은 막말인 1850년대 중엽이며, 서양 국가들에 대한 자주와 독립을 천명하는 개념으로서 채용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곧 대정봉환에 따른 메이지 유신 초기 일본 국가의 내면적 정체성으로서 '천황의 통치'를 강조하기 위해 '제국' 대신 '황국' (皇國)이 일정 기간 많이 유통된다. 그러나 1870년대 중엽 이래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표상하는 주요 개념으로 '제국'이 '황국' (皇國)을 대신하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개념어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이후 황국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 국가의 내면적 정체성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그리고 제국은 일본의 대외적 자기 정체성을 내세우는 개념으로 기능분화가 뚜렷해진다. 이 글은 그러한 개념사적 전개과정의 사상적·정치적 계기들을 고려한다. 이 맥락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와 이나가키 만지로 등의 언술에서 '제국의 이념'이라 할 요소들을 파악하고, 1870~80년대에 전개되는 '일본제국헌법' 성립의 정치와 1890년대 청일전쟁이 '제국'의 개념사에서 갖는 역사성을 주목한다.
황국이 일본 내면의 권위의 수직적 구조를 표상하는 것에 대해, 제국은 근대 초기에는 일본의 대외적인 자주와 자존,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부국강병의 목표의식을 내면화한 개념으로 선호되고, 이어 서양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를 거느린 광역적 지배국가의 위상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보편화하기 시작하였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러한 개념사적 전개과정에서 일본에게 '제국'의 개념은 적어도 동아시아와 관련하여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지역질서 관념을 폐기하고 그것을 일본 중심의 지역질서로 표상하는 데에 유용하게 동원된 측면이 있음을 주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