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치사에 대한 연구를 보다 면밀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전통사상과 그 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전통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했던 왕조시대의 정치를 분석하는 작업은 특히 그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을 유념하면서 본 연구는 조선의 건국과 그 건국주인 이성계에 관한 설화를 현대 정치학의 상징조작이라는 개념과 유기적으로 관련시켜 분석해봄으로써 건국기에 있어서 조선의 정치사와 조선인의 정치의식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시도하였다.
무엇보다 먼저 조선의 건국과 이성계 설화에 관한 문헌 기록,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각종 기록은 무엇보다 먼저 이성계에 의한 새로운 왕조개창의 천명성을 강조하였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이성계와 그 추종세력에 의한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곧 조선 왕실의 개창은 천명에 의한 것이었음을 강조하였는데, 일반 백성들의 복종과 지지 속에서 새로운 왕실이 성립하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천(天)과의 연계성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이성계에 관한 설화에는 새로운 군주의 탄생과 등극을 예고해 주는 신이한 징조와 꿈들이 문헌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났던 것이다. 문맥적 상황으로 볼 때, 하늘(天), 용, 꿈, 상서(祥瑞), 신이(神異) 등을 바탕으로 하는 이성계 설화 설화의 현세지향은 건국의 신성화와 왕통의 정통성을 목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군주 '꿈' 설화는 단순히 권력의 정당화 과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명의 대행자로서 군주를 신성화시킴으로써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다.
다른 한 편 일반민중들 사이에 구비전승된 이성계 설화에는 그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명태조 주원장에 비해 용렬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이성계의 모습, 최대의 정적이었던 최영 장군이 일반백성들 사이에 무속신앙화되었던 점, 그리고 민중영웅인 우뚜리의 등장과 제거 등에 관한 설화의 성립 등에서 이성계에 대한 반대자와 비판자들의 정치심리가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이와 같이 조선의 건국과정에서 이성계 설화가 담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은 당대의 정치사와 당대인들의 정치의식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