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다양한 의견들을 조정하는 일이다.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서 당면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단위가 국가라는 공적 차원이 될 때, 우리는 그 단위를 국회라고 부른다. 따라서 국회는 무엇보다 의논(議論)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의논이란 말이 議와 論의 합성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논'은 결론에 가까운 의미가 되며, '의'는 그 과정에 가까운 것이다. '논'이 혼자서 결단하는 것이라면, '의'는 여럿이 함께 구체적인 사안들을 따져보는 것이다.
본 논문은 1942년에서 1944년에 걸쳐, 중국 중경에서 있었던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제5차 개헌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임시의정원은 첫째, 우리 역사상 최초의 의회였으며, 둘째 임시의정원의 제5차 개헌은 좌파와 우파 그리고 무정부 세력을 총망라한 독립 운동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룬 최초의 '정치적 합의 개헌' 이었다. 제5차 개헌 논쟁의 핵심적 사안은 임시의정원을 어떻게 대한민국 전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있었다.
개헌을 위해 임시의정원은 정당별 의석수에 따라서 9인의 수개위원회를 구성하였고, 9인위원회는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다시 3인의 집필위원을 선정하여, 이들로 하여금 의논한 사안들을 정리하도록 하였다. 이 때 위원들 간에 의견이 서로 다른 경우, 억지로 의견을 맞추려 하지 않고 유보하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견이 가까워진 사안이 있으면, 계속하여 정치적 합의를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간파인 박건웅 의원은 조정자의 역할을 잘해주었으며, 홍진 의정원 의장의 의사진행과정 또한 매우 탁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