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자유공화국 최후의 날』(박계주, 1955), 『고난의 90일』(유진오 외, 1950), 『적화삼삭구인집(赤禍三朔九人集)』(양주동 외, 1951) 등을 대상으로 전쟁수기의 이야기 경험(narrative experience)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 전쟁수기들은 대부분 반공 수기가 아닐 수 없었는데 반공의 내면화는 이야기 경험의 효과와 관련하여 설명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논점이다.
반공 수기가 반복한 반공 이야기는 공산당의 만행을 그려냄으로써 공포―적의를 북돋았다. 참혹한 학살의 장면은 공포에 의한 몰입(immersion)을 요구한 것으로, 경험적 구체성을 재단(裁斷)하고 동원할 수 있었다. 한편 공산주의를 겪은 증인으로서 공산당의 악행을 고발하는 고백은 수기의 한 형식이었다. 이 수기들에서 국가는 공산주의와 공산당으로부터 자신들을 살려낸 구원자로 그려졌다. 국가의 명령인 반공은 구원의 조건이 된다.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 수기도 없지 않았다. 경험된 구체성이 지배적인 이야기 형식과 충돌하면서 씌어진 '서툰' 글들에서는 실상의 편린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 밖에 한국전쟁을 겪거나 보도한 외국인들의 수기 또한 번역되어 읽혔다.
반공 수기로서의 전쟁 수기는 전쟁을 통해 저질러진 폭력을 타자화함으로써 그에 대한 성찰을 어렵게 했다. 나아가 폭력의 타자화는 실제로 자의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놓인 무법상태를 외면하고 용인하게 했다.
수기의 프리미엄은 당시에 쓰인 소설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경험의 우선성을 앞세워 직접적인 보고 내지 전사(轉寫)의 형태를 취한다든가, 고발하고 고백하는 서술자를 앞세운 소설들은 수기와의 관련성 속에서 재독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