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4·19 이후 확산된 혁신담론을 검토함으로써 5·16 군사쿠데타를 겪은 후 이른바 민정이양(1963)에 이르기까지 혁명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언급되고 소통되었던가를 조명하려는 것이다. 혁신담론의 대상은 대중이다. 그것은 대중이 누구이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으며 따라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공공적인 기투企投의 형식을 취한다. 4·19 이후 혁신담론의 내적 논리를 구체화한 것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신생활운동'이다. 신생활운동은 대중을 상대로 의식과 생활의 혁신을 꾀했다. 그것은 피해대중의 입장에서 혁신을 위한 마땅한 강제를 시행하려 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혁명적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의 지속을 요구했다. 그러나 '거리의 사치를 청소한다'는 행동방침을 앞세운 계몽대의 활동은 '선의의 남용'으로 비판받는다. 5·16 군사쿠타 이후 쿠데타 세력이 국가재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한 재건국민운동은 혁신담론을 전유한 것이었다. 재건국민운동은 신생활운동에서처럼 대중의 정신개조와 내핍을 통한 생활합리화, 경제적 독립, 후진국을 벗어나는 근대화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재건국민운동이 앞세웠던 것은 반공이어서 신생활운동이 가른 피해대중과 소비대중의 구획은 무시되고 만다. 국민으로의 통합이 명령되었던 것이다. 재건국민운동은 긴급의식을 강조함으로써 군사주의를 수용했고 결과적으로 특별한 지도자의 등극을 정당화한다.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 파병을 결정하고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한다. 경제적 자립과 민주복지국가의 건설을 위한 선택은 미국, 일본과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불평등 거래로 시작되었다. 이른바 민정이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쓰인 김승 단편소설「서울 1964년 겨울」이 그려낸 인물들에게 혁명은 더 이상 그들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무기력하고 우울할 뿐이다. '감수성의 혁명'을 보여주었다는 이 소설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폐허에 대한 알레고리로 쓰인 점을 지적한 것일 수 있다. 이미 끝나버린 폐허의 시간 속에 놓인 무기력한 군상들을 향한 애도의 감정을 숨김으로써 대상은 짐짓 무심하게 비춰지거나 또 그만큼 발랄한 감각적 색채를 입는다. 새로운 변화가 곧 파편화[散華]임을 보는 긴장 속에서 감수성의 혁명은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