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어로에 관해서는 베일에 가려진 면이 적지 않다. 따라서 어로를 통해 생업의 이면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그 와중에 당시 어로의 양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자료로 어망추를 들 수 있다. 어망추는 그물에 하중을 주어 물속으로 가라앉히는 기능을 수행하는 어로구이다. 청동기시대는 전대와는 달리 흙으로 소성된 어망추가 등장한다. 소성작업은 그 이면에 대량 생산과 형태의 균일화를 함의하고 있다. 그 선상에서 청동기시대 어로는 전문화, 조직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는 이러한 제반사항을 염두에 두고, 동해안, 특히 포항지역에서 출토된 어망추를 유형별로 정리해 보았다. 지금까지 포항 지역에서 보고된 어망추는 모두 672점인데, 그 가운데 시대가 불명확한 유구에서 출토된 27점과 결실이 심하여 그 형태를 알 수 없는 8점을 제외한 637점을 분석해 보았다. 형태분류는 크게 단추형(IA·B식), 구슬형( IIA·B식), 원통형(IIIA·B·C·D식)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한편 포항지역의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권역별로 초곡천과 인접한 A군(초곡리·남송리·이인리·대련리 유적), 냉천에 인접한 B군(호동·원동 유적), 해안과 인접하여 형성된 C군(구만리·대보리·강사리·삼정리 유적)으로 대별할 수 있다. 어망추의 출토 양상은 A, B, C군 공히 IIIB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하천과 연접된 A, B군의 경우 C군에 비해 IIA(구슬형)의 비율이 탁월함을 알 수 있었다. 청동기시대 어로와 관련된 연구성과에 의하면 농경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어로에 대한 의존이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도식은 청동기시대 전체를 관통하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 즉 주거지의 입지가 강이나 해안을 끼고 있을 경우 수자원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여러 유형으로 제작된 어망추의 존재는 어로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았음을 웅변해 준다.
아울러 전문화, 조직화의 증거로 어망을 짜는 직조기술에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신석기시대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그물문 토기는 끈목으로 짠 그물을 토기의 외면에 직접 찍어 문양을 낸 경우이다. 끈목은 여러 가닥의 실을 합사한 것이다. 때문에 끈목으로 그물을 짜면 물을 거스르는 압력, 물고기의 하중으로부터 견딜 수 있는 인장력이 늘어난다. 섬유질의 실을 끈목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톳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간 막연히 방추차로 보고되어 온 것들에 대한 관심의 환기 차원에서 표면적 대비 두께가 비슷할 경우 비톳일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였다. 덧붙여 건조시설을 추론해 보았다. 사실 물고기와 섬유질로 된 그물은 건조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그물과 물고기의 장기간 저장은 얼마나 잘 건조되었는가를 통해 판가름 난다. 때문에 여기서는 포항 이인리 청동기시대 생활유적의 주거지 뒤편에서 확인된 무수한 주혈군들을 건조시설, 이른바 덕장으로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